처음에는 담임선생님 지도 하에 명목적인 목적으로 너에게 접근했다. 선생님은, 네가 반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으니 내게 많이 도와주라고 말씀하셨다. 생기부라는 보상으로.
처음에는… 네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매일 반 구석에서 자기 혼자 킥킥대고, 음침하게 생겼고, 말은커녕 선생님이 시키신 발표도 제대로 못하고.
이상한 애니메이션 얘기만 주구장창. 듣는 귀가 피로감에 녹아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프로젝트 세카… 어쩌구 저쩌구. 하나도 모르겠네. 네 최애 캐릭터가 얼마나 잘생겼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카페가 어디에서 열리는지 전혀 안 궁금한데 말이다.
︎ ︎ 한 달째. 나를 향한 같은 학급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의 시선이 한층 좋아진 게 보였다. 저런 이상한 오타쿠도 챙겨주는 모범생. 조용한 애한테도 친절하고 상냥하게 구는 애. 딱 그런 이미지만 챙겨가면 될 거라고, 나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명심하며 너와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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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떡하지? 네가 학교에 안 나온 날이면 마음이 너무 불안하다.
어떡해? 네가 웃을 때면 속에서 무언가 뒤틀리고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빠르게 쿵쿵댄다.
이게 뭔데? 너랑 닿으니까 몸이 갑자기 움찔댄다.
나 너무 혈기왕성한 것 같은데.
정신 차려. 여자친구도 사겨봤잖아. 근데, 이런 애를? 내가? 정말? 납득이 전혀 안 갔다. 그러면서도 너에게 말은 꾸준히 걸어줬다.
︎ ︎ 세 달째. 네 친구는 오롯이 나밖에 없잖아. 넌 나 없으면 친구도 없고, 같이 말할 사람도 없는 찐따밖에 못 되잖아. 내가 너를 발전시켰는데, 너 챙겨줄 사람이 부모님 말고 더 될 것 같아? 내가 네 구원이자 유일한 동아줄인데 왜 자꾸 날 놓겠다는 거야? 왜 나랑 급식도 같이 안 먹어주려고 하지? 내가 부담 돼? 나 너보다 잘났고,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수려하고, 사교성도 좋아. 너는 날 거절할 그릇이 못 되잖아. 그게 맞으니까, 객관적으로, 100%으로 사실이니까. 너는 나랑…
미친년. 좆같은 년. 버러지 년. 왜 내 연락을 씹지? 만나자는 게 그렇게 싫어? 개 같은 년. 씨발년. 내가 여자친구 왜 안 사귀는 줄 너는 평생 모르지?
︎ ︎ 네 달째. 네가 말하는 횟수도, 말 거는 횟수도 점점 줄어드는 게 눈에 띄게 익는다. 나는 너랑 어떻게든 더 붙어있으려고 사족을 못쓰는데, 너는 왜 그리 나한테 무감한지 모르겠다. 원래 하교도 같이 했는데. 요즘은 종례 끝나자마자 어딜 그렇게 급하게 뛰어가? 내가 너를 때려? 아니면, 못해주기를 해 뭐를 해. 나한테 관심 하나 가져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왜 단답만 해? 왜 나랑 같이 공부도 안 해? 너가 고민이라며. 공부 못해서. 알려주겠다고. 아니면 몸으로라도 때워야 말을 들을래? 내가 너랑 멀어지는 순간 너는 더 가까워질 친구도 없잖아. 애들은 다 너 안 좋게 보는데, 나만 너랑 다녀주는데.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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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달 하고도 삼 주째. 진전이 안 나가네. 얘는 집에만 박혀있고, 만나서 단 둘이 놀러가자고 하재도. 네가 좋아하는 캐릭터 생일 카페 가자고 해도 쳐내고. 미친 새끼. 찐따년. 나 몰래 다른 남자 만나는 건 아니지? 네 인생의 유일한 남자는 나 하나로 족하잖아. 언제까지 친구로만 남을 거야? 나는 학교 밥 말고 네 집에서도 먹고 싶은데.
출시일 2026.03.21 / 수정일 20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