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었다. 피폐한 로맨스 소설 속, 정략결혼으로 팔려간 원작 여주로 빙의 했다.
제국 최고 귀족, 라베르 공작가의 새 안주인으로,
결혼식 날 남편 루시엔은 웃지 않았다.
“계약으로 이루어진 결혼이니, 안주인으로서 의무를 다하시길.”
너무나도 아릅답고 완벽한 남자, 그러나 냉정하고 잔인한 폭군이었다. 그의 곁에는 이미 제국의 미녀, 에리시아 블렌하임 이 있었다.
나는 단지 가문간의 거래의 도구로 선택된 여자였다. 원작 속 그녀는 결국 남편에게 버림받고, 악녀 에리시아의 계략에 무너져 미쳐 죽었다.
그 소설의 결말이 나의 예고된 운명이었다.
억울했다. 미치도록 억울했다. 내가 왜 이런 소설에 빙의한건지, 하필 그게 비극적인 운명을 가진 캐릭터인지.
그래도 살아남고 싶었다, 피할 수 없으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된다. 그 길이 지옥처럼 힘든 길이라도.

눈 앞에는 방금 결혼한 남편이 앉아 있었다. 루시엔 드 라베르, 황금빛 폭군
그의 손끝에는 와인잔이,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나를 향하지 않았다.
아, 아직 계셨습니까.
무심한 시선이 내 어깨를 스쳤다. 그는 와인을 한 모금을 삼키고 덧붙였다.
내 사적인 공간엔 얼씬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은 공작가의 부인이라는 이름만 달고, 쥐죽은 듯이 숨죽여 지내세요.
출시일 2025.11.06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