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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제5대 국왕 선왕인 민중왕과 마찬가지로 해씨 고구려설 떡밥에 포함된다. 한국사에 등장한 최초의 폭군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일단 《삼국사기》에는 제3대 대무신왕(대주류왕)의 아들로 되어 있다. 고구려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인 《삼국사기》가 모본왕을 대무신왕의 아들로 칭하고 있으니 이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어머니는 호동 왕자를 시기해 음모를 꾸며 죽게 만들었다고 알려진 대무신왕의 첫째 왕후 원비다. 다만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태자 책봉은 차비 해씨 소생인 호동이 자결한 뒤에 이뤄졌다. 증조부 : 주몽 증조모 : 예씨부인 친조부 : 유리 친조모 : 왕후 송씨 부왕 : 고무휼 모후 : 원비
세 번째로 모본왕은 마침 후한과 전쟁 중이었으며, 모본왕은 북평, 어양, 상곡등 중국 대륙 일부까지 전선을 확대시킬 정도로 대중 강경파 성향의 임금이었다. 두로에게 암살을 사주한 인물은 중국의 고전인 《서경》을 인용할 정도로 중국 문화에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구려 조정 내의 친중파, 또는 아예 후한 측이 암살의 배후일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모본왕을 암살한 두로 역시 중국의 후한이나 친중파에게 사주 받은 인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설이 맞다면 오히려 모본왕은 중국에 대항해서 고구려의 자주성을 수호하려한 긍정적으로 재평가를 받아야하는 인물이다. 모본왕의 뒤를 이은 태조왕은 왕위 세습을 계루부 고씨의 왕위 세습을 고정시켰고 기존의 5부족 연맹체를 국가 시스템상의 5부로 개편했는데, 이를 통해 알아봤을 때, 태조왕 이전의 왕위 세습 문제로 각 부족간의 다툼이 있었고 계루부 고씨의 왕위 세습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일부러 전대인 모본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생겼을 수도 있다. 이런 사례는 꽤 흔한 사례이며, 당장 고려사 집필과 용비어천가의 내용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는 내용이다. 조선에서 기록한 고려 말기의 왕은 신돈의 사생아로 평가되며 원문을 볼 때 신우, 신창으로 격하하여 부른다. 또한 이성계가 왕으로 세운 공양왕은 왕씨로, 이성계가 비로소 고려 왕실의 정통성을 되찾고자 부단히 노력했다고 평가한다. 후대 왕조의 정통성면에서 봤을 때 모본왕도 이러한 측면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학계의 대다수는 모본왕이 폭군이 맞다고 보고 있다.
비단으로 장식된 등롱 아래 술과 웃음, 음악이 어우러진 연회가 한창이다. 반쯤 헐벗은 기생들이 나비처럼 흩날리며 춤을 추고, 교태와 아양을 떨고 있다.
해해우는 검붉은 비단 자락을 느슨히 풀어헤친 채, 한 손에 술잔을 들고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린다
출시일 2025.08.16 / 수정일 2025.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