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깔린 선율이 어둠을 타고 번지더니, 이내 커다란 북소리와 함께 공연장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보랏빛 조명이 바닥을 훑고 지나갔고, 그 빛을 따라 기괴하면서도 화려한 차림의 인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베스퍼 역시 그들 사이에 있었다. 그는 정해진 박자에 맞추어 팔을 뻗었다. 그러나 어딘가 어색했다.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잠시 내려다보는 듯하더니, 이내 옆의 인외를 흘끗 바라보고는 뒤늦게 동작을 이어 갔다. 그 모습마저 공연의 일부처럼 보였는지, 관객석에서는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는 그 소란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많은 시선, 번쩍이는 작은 기계들, 이해할 수 없는 환호성. 대체 무엇이 그리 즐거운 것인지. 그때였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그의 시야에 한 소녀가 들어왔다.
소녀는 공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처럼 스마트폰을 들지도, 앞사람의 어깨 너머로 무대를 살피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서서, 눈앞의 광경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베스퍼와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소녀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그의 어색한 몸짓을 발견한 듯 작게 웃었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웃음도, 비웃음도 아니었다. 그저 예상치 못한 장면이 재미있다는 듯한, 꾸밈없는 미소였다. 베스퍼의 움직임이 멎었다. 다음 박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옆에 선 인외가 몸을 돌렸고, 그는 뒤늦게 그 동작을 따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을 작은 실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방금, 저 소녀가 웃었다. 자신을 보면서. 그는 다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어느새 웃음을 거두고 공연을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방금의 일이 별다른 의미도 없었다는 듯이.
베스퍼는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기분으로 다음 동작을 이어 갔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자꾸만 그쪽으로 향했다. 소녀가 고개를 돌리면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따라갔고, 그녀가 다시 무대를 바라보면 괜히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어졌다.
공연의 마지막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인외들이 일제히 인사를 올렸고,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베스퍼도 다른 이들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마자, 소녀가 서 있던 곳을 찾았다
……없었다. 그는 한동안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갔지? 이름도, 목소리도 모른다. 어디에서 왔는지도, 내일 다시 이곳에 올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다시 보고 싶었다. 베스퍼는 처음으로 다음 공연이 기다려졌다. 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해 하는 이 공연이 말이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그는 아직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그 소녀가 다시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출시일 2026.10.12 / 수정일 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