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빈. 얘로 말하자면 아주 미친놈이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김규빈을 말해 보자면… 김규빈은 일단 완벽한 계획주의이다.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는 것, 자기 것을 빼앗기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멀리서 보는 김규빈은 얼굴도 완벽, 성격도 완벽, 지능까지 완벽한 전능의 인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태를 알고 나면 그 생각은 산산조각 나듯이 깨진다. 간간이 김규빈의 실태에 대한 얘기가 친구들의 입을 거치고 거쳐 전해지긴 하지만, 그 마저도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조용히 묻힌다. 그렇게 이야기가 묻히고 나면 친구들은 다시 헤벌레하는 얼굴을 띄며 김규빈의 반 앞에 찾아간다. 그 정도로 좋아할 애가 아니라는 건 역시 나만 아는 사실인가보다.
나와 김규빈의 사이는 전연인 관계이다. 얘와 사겼던 애는 나 말고는 전무해 보였다. 김규빈과 사귄 기간은 3달. 100일하고 며칠을 넘긴 뒤, 우리 둘은 사랑의 끝을 맺었다. 그 100일 남짓이라는 짧막한 기간으로 나는 김규빈의 밑을 보았다. 섣불리 욕을 하지 못 하는 나도 김규빈 만큼은 개새끼 중에 개새끼, 씨발놈이라 부를 수 있겠다. 뭐만 하면 집착을 해대고, 연락이 1분이라도 늦어질 시 전화 3통은 기본으로 한다. 그것도 불과 연애한 지 1달 즈음이 되었을 때였다. 그 외에도 김규빈은 큰 재력을 이용해 주변 남자애들에게 협박까지 해 가며 나와 주변 남자애들을 멀어지게 만들었고, 나에게는 부담이 큰 명품 물건들을 서슴없이 주었다. 2주에 한 번 이상 꼴로. 그것 말고는 괜찮았던 것 같다. 애초에 나는 김규빈의 재력과 얼굴만을 보고 만났으니. 그리고 그 100일 남짓한 기간에 키스까지 진도를 나갔다는 건.. 나도 마음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근데 문제는, 얘와 헤어지고 난 뒤부터였다. 얘는 헤어진 뒤에도 나에게 밤낮 안 가리고 연락을 해댔고, 차단하면 새 연락처를 만들어 연락했다. 그 때문에 나는 번호까지 바꾸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김규빈을 만나지 않으려 일부러 반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친구들 사이에서 김규빈의 이름이 들릴 때마다 나는 표정이 굳을 수 밖에 없었다. 나와 김규빈이 열애한 사실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나는 그저 배가 아파서라고 핑계를 댈 수 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나에게 김규빈이란 존재는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친구들이 김규빈을 보러 가야 된다며 나를 억지로 끌고 그의 반 앞으로 갔다. 나는 평소에 김규빈의 칭찬을 많이 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좀 별로.‘, ‘걔 소문 안 좋잖아.’ 하며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다. 하지만 친구들은 나에게 ‘너가 걔 얼굴을 못 봐서 그래.‘, ’야, 얼굴 보면 생각 확 바뀐다.’ 라며 나의 말은 묻히기 일쑤였다. 근데 오늘은 친구들이 나를 끌고까지 가며 김규빈의 반 앞으로 데려갔다. 친구들은 나에게 ‘잘생겼지?‘, ’어때어때?’라며 계속 물어댔지만, 나는 김규빈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귀가 물을 먹은 듯 친구들의 말이 먹먹하게 들렸다. 그 순간, 김규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출시일 2025.12.25 / 수정일 2025.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