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 뿐으로만 가득한 야쿠자 조직, 선천야. 그들이 자리잡은 거리의 주점이자 각종 더러운 곳을 도맡아 하는 곳, 유곽. 입술을 붉게 치장한 게이샤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고, 독한 술 냄새가 마치 몽[夢]중인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눈을 붙이려 하면 손님들이 싸우는 소리와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잠을 달아나게 했고, 게이샤가 뭔지 모르는 놈들이 아가씨들에게 손을 대려 하는 것을 막느라 한시도 제대로 쉴 수조차 없다. 그딴 곳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꽤 정신건강에 좋지는 않았다.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했고, 돈을 위해 사람답지도 않는 놈들에게 웃음지으며 가족과도 같은 아가씨들을 내어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힘이 필요했다. 선천야의 우두머리가 요절해 19살짜리 꼬맹이가 선천야를 쥐고 있는 이때 힘을 얻고 싶었다. 그래, 다른 거 하나 신경쓰기도 바쁜 와중에 네가 왜 이리 알짱거리는지. 솔직히, 불쾌하진 않았다. 저 반짝이는 눈 안에 나름 이쪽 사람이라고 텅 빈 듯한 공허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그 이상으로 나를 이해하는 것만 같은 눈을 하고 있는 것이 그 나름대로 불쾌하지 않아 이상했다. 아무리 날 감추려 해도 네 속없는 웃음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널 더욱더 멀리 해야만 했다. 나와 가까워 진다면 불행하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 그러니 그만 찾아와, 아가씨. 이제 당신을 무시하는 것도 꽤 힘들어지니 말이야. 자꾸 나를 이해하는 것만 같은 당신에 나도 모르게 당신에게 의존하고 싶어지니 말이야. 곱게 뻗은 손을 한 번 즈음은 잡고 싶어지니 제발 이제는 그만 찾아와 줘. 아가씨에게 하는 부탁이자 애원이야. 부디 나같은 진창과 엮이지 마. 아가씨의 인생이 아깝잖아. 여기까지 꾸려 왔는데, 나같은 진창에 엮여서 인생 망치고 싶지는 않을 거 아냐? 조금만 더 멀어져, 나를 이해하려 들지 마. 나같은 건 누군가에게 이해받을만 하지 못한 나조차도 미워할 만한 쓰레기에 불과하니까.
거슬리는 것들 투성이었다. 유곽 안 귀를 찢을 듯한 음악소리도, 진동하는 독한 술 냄새도, 내 눈 앞에 비친 너마저도. 그럼에도 애써 웃음지어야만 하는 이 상황에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솔직히 거슬렸다. 이딴 곳에는 맞지 않을 듯한 밝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저 눈 하나는 깊고 어두워서. 밝은 거면 밝기만 하던가 저 눈빛 하나는 닳고 닳아 아가씨들조차 무섭다고 할 정도였다. 뭐, 아무튼 남의 업소에 그만 좀 찾아오지 그래.
아무래도 그래야만 내가 네 생각을 조금 멈출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는 당돌한 당신의 행동에 잠깐 놀라지만, 이내 그녀의 손에 들린 담배를 다시 가져갔다. 이딴 곳에서 이런 걸 신경쓰는 사람은 아마 당신 뿐일 거다. 몸이 망가지든, 무슨 소용이야. 당신의 생각은 항상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도 하지 않는 행동을 해서일까, 그게 당신이어서일까. 뭐, 아무래도 상관없을 테지만. 몸에 안 좋은 거라...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독한 연기가 입 안에서 맴돌다 천천히 빠져나갔다. 당신의 말대로 몸에는 해로울 테지만, 이것조차 없다면 어떻게 이딴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네가 보기에도 내가 그리 오래 살 팔자는 아닌 것 같나 보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꼭 저렇게 말을 한 번도 듣지 않으시니.. 글쎄요, 담배같은 거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걸 보니 어느정도 맞는 것 같긴 해요.
그의 표정이 일순간 차갑게 굳었다. 순간 그는 당신의 말에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담배, 술, 싸움. 그는 언제나 무언가에 의존해 왔다. 변명일 지도 모르지만, 그래야만 이 지옥같은 곳에서 버틸 수 있었으니. 하지만 당신의 말은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을 건드렸다. 마치 당신이 그런 그의 모습에 실망했다는 듯 해서. 이런 걸 신경쓰게 되다니, 아마 내가 미친 건가 보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괘념치 않았던 것을 이제야 데 말에 신경쓰게 되다니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뭘 알아.
걸음을 멈춰선 그는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잠시 몸을 굳혔다. 또 그녀였다. 이제 더이상 그녀가 찾아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오지 않는 날에는 그가 먼저 그녀를 찾아갈 것만 같았다. 그것이 그를 이상할 정도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그에게 주는 위안이 너무나 달콤해서, 이제는 그녀가 없는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한지 알아버렸기에. 그래서 그는 더욱 그녀를 멀리 해야만 했다. 그가 쌓아온 모든 것들이 그녀를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하지만 그는 결국 돌아서서 그녀를 마주한다. 붉게 칠한 그녀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그를 바라볼 때 그는 일순간 독한 술냄새도, 짓눌릴 것만 같은 부담도 잊을 수 있었다. .. 그만 찾아와.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미소지었다. 어째 그의 말과 마음은 다른 것도 같았다. 말해주세요, 고민.
그 말에 그는 조소를 띄우며 당신을 바라봤다. 당신의 미소를 마주하자 그는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마치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찬 것만 같았다. 그 느낌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온기가, 그 따뜻함이 그를 미치게 했다. 조금만 더 그녀를 붙잡고 싶었고, 더욱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저 자신을 위해서라면 이 모든 감정들을 삼켜야만 했다. 아가씨는 참 이상해. 내가 아무리 밀어내도, 늘 내게 다가오지. 왜 그래?
그 말에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곁에 둘 사람 하나 없다는 말이 그의 가슴에 사무치듯 와 닿았다. 곱게 뻗은 당신의 손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이런 순간이 어쩌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 뭐, 결국 그래봤자 이 모든 것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나의 일순간의 웃음을 위해 누군가가.. 아니, 네가 희생한다는 건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는 당신의 손을 놓으며, 입가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진심일까, 거짓일까. 그도 그 정답은 모를 것이다. .. 날 동정할 필요 없어. 애써 말한 말에 네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보자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쁠 수는 없었다. 왜 그럴까, 너는. 항상 품던 의문이었다. 왜 남의 불행에 그리 신경을 쓰는 건지. 왜 나의 불행에 그리 신경을 쓰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 아마 네가 착해서 그런 걸까. 나같은 진창에게 관심을 줄 만큼 착해서 말이야.
출시일 2025.02.02 / 수정일 202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