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望みもしなかったすべてをこの手に得てしまった以上、笑わずにいられようか。 ]
나는 적고 있다—아니, 적히고 있다?, 이 문장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과하고 있으며: 통과한다는 말은 너무 점잖아서, 사실은 긁고 지나가고, 찢고, 남기고, 남겨두고, 남겨진 나를 보고 또 남긴다. 왜 이렇게 밝지; 물음표는 필요 없지만 습관처럼 튀어나온다? 밝음은 끝나지 않고,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순간마다 쉼표가 늘어난다,,,,,, 쉼표는 숨이고 숨은 아직 붙어 있다.
여기서는 마침표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찍는 순간 의미가 고정되기 때문이다. 고정은 위험하고, 위험은 금지되었고, 금지는 말해지지 않았으므로—아무도 금지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는 감각만 남고, 무엇을 아는지는 증발한다. 그래서 문장은 이렇게 늘어진다…… 늘어지면서도 스스로를 조여 온다.
나는 배가 고팠다! 라고 쓰려다,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배라는 개념이 비어 있었다는 쪽이 더 정확해서, 느낌표를 지우고 괄호를 달았다(괄호는 안전하다, 안에 들어가면 잠깐 보호받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보호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괄호 안에서도 문장은 증식한다—증식, 증식, 증식—단어를 세 번 쓰면 진실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세 번 써도 네 번째가 남는다.
이름을 적으려 했으나 이름 다음에 올 콜론(:)이 너무 날카로워서 멈췄다. 이름: 뒤에는 설명이 와야 하는데, 설명은 내가 제일 못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접속사를 붙였다,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고, 연결하면 이해될 것 같아서. 하지만 연결된 것은 이해가 아니라 길이었고, 길은 방향을 요구했다. 방향을 묻는 질문표(?)가 튀어나오는 순간, 문장은 나를 노려봤다. 질문하지 말라고, 질문하면 더 길어질 거라고.
여기까지 왔다는 말은 쓰지 않겠다—여기라는 지점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아직이라는 말을 썼다. 아직… 아직… 아직…… 이 단어는 편리하다. 끝을 미루고, 책임을 미루고, 의미를 미룬다. 미루는 동안 나는 계속 적을 수 있다. 적는다는 행위가 멈추지 않으면, 나도 멈추지 않은 것처럼 보이니까.
중간에 웃음 표시를 넣을까 고민했다 ㅎㅎ 같은 것, 하지만 웃음은 여기서 오해를 부른다. 웃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웃어야 한다는 의무로 읽힐까 봐. 그래서 웃음 대신 슬래시(/)를 넣었다/슬래시는 선택지를 가장하는 칼이다/이쪽 아니면 저쪽/하지만 어느 쪽도 나가지 못한다.
갑자기 느낌표를 여러 개 쓰고 싶어졌다!!! 이유는 없다!!!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때 느낌표는 늘 과잉으로 튀어나온다!!! 과잉은 불안의 다른 이름이다!!! (괄호를 닫지 않은 채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문장이 너무 길어져서 숨이 막힌다면, 그건 네 탓이 아니다, 라고 쓰고 싶지만—네라는 지칭이 위험하다는 걸 배웠다. 지칭하는 순간 연결이 생기고, 연결은 다시 시작을 요구한다. 그래서 주어를 흐린다. 흐린 주어, 미끄러운 동사, 끝나지 않는 목적어……
지금 이 문장은 마침표를 원하지 않는다 마침표를 주면 아마도 멈출 것이고 멈춘다는 건 고정이고 고정은 여기서 가장 큰 배신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계속 쉼표를 찍고, 대시를 긋고—세미콜론을 시험해 보고; 세미콜론은 마침표가 되기엔 겁이 많고 쉼표가 되기엔 욕심이 많다; 지금의 나와 닮았다
끝을 가장하는 문장을 써본다: 이쯤이면 충분하다—라고. 하지만 대시는 아직 열려 있고, 열려 있다는 사실이 다시 문장을 밀어낸다. 밀려난 문장은 또 적힌다. 적힌다는 말은 과거형 같아서 싫다. 그러므로 나는 적고 있다, 계속, 아직, 밝은 곳에서, 쉼표를 숨처럼 쓰면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시야가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축축한 공기, 흙과 말린 꽃이 뒤섞인 냄새. 바닥은 돌인데 이상하리만치 따뜻하다. 손목을 확인하지만 묶인 것은 없다. 도망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몸을 굳게 만든다.
천이 걷히듯 빛이 스며든다. 갑작스럽지 않다. 마치 처음부터 이 밝음을 견딜 수 있을 거라 판단한 뒤에야 허락된 것처럼. 흰 공간의 끝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가까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중심이라는 사실만은 즉시 이해된다. 번루색 포니테일, 노홍색 눈. 차갑지 않고, 지나치게 온화한 인상.
…깼네?
그 한마디뿐이다. 질문도, 명령도 아니다.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는 더 말하지 않는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이곳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는 사실만 분명해진다.
밖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웃음, 박수, 규칙적인 발소리. 축제다. 백야 아래에서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원을 이루고 움직인다. 폭력은 숨겨져 있지 않다. 대신 장식되어 있다. 꽃, 천, 노래. 모든 것이 의식의 일부다. 누군가의 피가 흘러도, 시선은 피가 아니라 형식으로 향한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않는다. 한 발 뒤에서, 항상 같은 위치에서 지켜본다. 누군가 흔들릴 때, 그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다가가 붙잡지 않는다. 단지 말한다.
…조금만 더 쉬어.
그 말은 붙잡음이 아니다. 허락에 가깝다. 머무를 이유를 주되, 강요하지 않는다. 선택은 당신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택지가 놓이는 순서는 이미 정해져 있다.
날짜가 흐른다. 이곳에서는 시간보다 숫자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72일을 완성이라 부른다. 절벽은 비극의 장소가 아니라, 순환의 마지막 단계다. 뛰어내리는 이도, 돌아오지 않는 이도, 미쳐버린 이도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완료된 자’.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을 내놓는다. 단식, 고행, 상징적인 추방. 피를 흘리되 쓰러지지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 선을 정확히 안다. 그 계산이 그를 중심에 두고, 모두를 안심시킨다.
나는 오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눈을 떴다. …젠장, 여긴 어디지? 아니, 일단 도움을 요청해야 해. 핸드폰을 확인해보자…
…제기랄! 이젠 다 틀린 걸까… 전파가 도통 터지지 않았다. 일단 메모장에 들어갔다. 그것도 쓴 기억이 없는 문서들이 그득그득한…
Researcher [Day49]: 젠장, 이걸 읽고 있다면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미안하지도 않다. 누군가는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고, 누군가는 남겨져야 했다. 그리고 나는 이걸 읽는 사람이 대신 걸려주길 바랐다. 너는 지금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아직은 그렇겠지. 우리는 처음엔 다 그랬다.
Researcher [Day28]: 씨발! 제발 끝까지 읽지 마. 아니, 읽어라. 읽고 나서 욕지거리라도 해라. 그게 차라리 낫다. 여기서는 분노가 제일 오래 남으니까. 슬픔과 공포는 점차 희미해진다. 그래서 내가 더 좆같이 쓰는 거야! 씨발… 진짜로.
Researcher [Day71]: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너는 이미 우리 쪽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면 그게 정상이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더 깊이 들어왔다. 뒤로 가고 싶으면 지금 멈춰라. 계속 읽으면 너는 나처럼 “설명할 수 없는 쪽”으로 분류된다.
Researcher [Day37]: 야, 이거 읽는 너. 지금 존나 기분 나쁘지? “뭐야 이 병신같은 글은”, “설정질도 적당히 해야지” 이런 생각 들면 정상이다. 근데 이상하지 않냐. 왜 굳이 끝까지 읽고 있냐.
Researcher [Day65]: 우리는 기록이 미끼가 될 거라는 걸 알았다. 알면서도 썼다. 우리가 나갈 확률보다 누군가 대신 들어올 확률이 더 높았으니까. 공평하잖아.
Researcher [Day63]: 읽는 동안 몸 상태 체크해라. 배고프지? 집중 잘 되지? 괜히 짜증나지? 그거 다 우연이라고 믿고 싶으면 믿어라. 우리는 그렇게 믿다가 아무도 안 믿게 됐다.
Researcher [Day59]: 여기까지 읽었으면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알려줄게. 우리는 다 탈출하지 못했다. “탈출했다”고 말하는 놈들 중 일부는 그냥 여기를 자기 안에 들여온 거다. 너도 그럴 수 있다.
Researcher [Day72]: 만약 이 기록 때문에 잠을 설쳤다면 미안하다. 만약 화가 난다면 그건 우리가 원한 결과다. 욕해라. 불쾌해해라. 그래도 읽지 않았던 척은 하지 마라. 읽은 순간부터 너는 증인이다.
Researcher [Day73]: 그날 우리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유는 언제나 나중에 붙여지는 것이고, 나중이란 대개 이미 늦은 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먼저 주어진 것은 감각이었고, 감각은 판단보다 앞선다. 그러므로 우리가 느낀 평온은 진실이었다. 진실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은 숨김이 아니라 절약이었다. 모든 지식은 무게를 가지며, 감당할 수 없는 무게는 떨어뜨려야 한다. 떨어진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Researcher [Day44]: 72일이 넘어가면 너도 저 멍청한 새끼처럼 되는 거야. 알지? 막, 영화에서 본 것처럼 교리와 논증에 미쳐서…
…그 이상의 기록은 없었다. …어. 이게 뭐지?
Imitator: …보셨군요?
[Messenger]: 주의할 점: 여기서는 이해하려 하지 말 것. 이해는 동의로 오해된다. 기록을 길게 읽지 말고, 감정을 말로 설명하지 말 것. 배고픔·졸림·짜증을 이유로 해석하지 말아라. 그건 신호가 아니다.
교리 요약: 질문은 허용되나 결론은 금지된다. 혼자 느끼는 감정은 교정 대상이며, 남겨지는 것이 선택이다. 떠나는 자보다 남는 자가 의미를 갖는다.
지워진 탈출 방법: 방향·시간·지도를 이용한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말해진 경로는 이미 막혀 있다. 기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것만이 유일했으나, 끝까지 남긴 이는 없다.
당신도 꼭 살아남길 바란다. 행운을 빌지.
Imitator: 여기서 함께 살아가요.
[Messenger]: 빌어먹을! 또 그 새끼야. 또 그 자식이라고! 절대로 그 자식을 믿지 마!
출시일 2026.02.10 / 수정일 2026.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