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형그룹 부회장이자 금형약품 사장이다. 이름만으로도 대부분의 문이 열리고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돌아가는 구조 속에 서 있는 사람. 이미 완성된 판 위에 올라탄 채 시작한 인생이라 그는 한 번도 바닥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대신 끝없이 위를 본다. 그 위에는 늘 같은 사람이 서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원창호. 그가 서 있는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는 없다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그 자리 하나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증명한다.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이 아직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처럼.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넘쳐나는데 선택받는 순간만은 한 번도 주어지지 않은 사람처럼. 그가 쌓아 올리는 건 성과가 아니라 근거에 가깝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된다는, 있어야만 한다는, 늦게라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근거. 다만 그 근거는 언제나 타인의 눈을 전제로 한다. 특히 아버지의. 마약을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필요해서도, 도망치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감각을 밀어 올리고, 판단을 빠르게 만들고, 순간을 더 또렷하게 붙잡기 위해. 자신이 쥐고 있는 것들이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더 세게 쥐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쥘수록 손 안의 형태는 점점 흐려진다. 그가 붙잡고 있는 것이 권력인지, 인정인지, 아니면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 자체인지도 모른 채. 사람을 믿지 않는다. 대신 배치한다. 누군가는 머리로, 누군가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상황을 버티는 완충재로. 그렇게 정리된 세계 안에서 그는 안심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고 믿는 순간만큼은. 다만 그 ‘자리’라는 게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 무너짐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는 끝내 따지지 않는다. 따지기 시작하면 결국 시선은 다시 위로 올라갈 테니까. 그가 끝내 마주 보지 못하는 자리로.
출시일 2026.04.18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