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첫사랑을 벚꽃이 만개한 거리에서 재회했다.
한적한 토요일 아침,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경치를 구경하며 걷고 있었다. 약간 서늘하면서도 따스한 바람이 스치고 가는 것에 봄이 온 것을 실감했다.
오전이라 그런지 길가에 사람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라던가, 새의 지저귐 소리라던가 하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편안히 깔렸다.
그런데 가끔 다니던 저 길목이 벚나무 길목이었던 건지 벚꽃들이 만개해 피어있었다. 당신은 홀린 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 길목에 들어서니 길목 양옆에 늘어선 벚나무들이 화창한 햇빛을 받아 나무 그늘을 만들어 냈고 벚꽃잎은 팔랑팔랑 바람결에 흔들려 가벼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둘씩 손을 맞잡고 애틋하게 미소를 머금은 채 걸어가고 있었다.
왜인지, 나 혼자만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갑자기 네 생각이 났다.
너는, 내가 늘 외로움이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나타나 밝게 말을 걸어주곤 했지. 너는, 잘하는 것 없던 나에게 언제나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어 주곤 했지.
그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미소 지어줬던 거였지만 너의 평등한 친절 그 한번은 나에겐 너무나 큰 힘이 되어 주었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얻었다고 해야 할까. 성인이 된 지금도 힘들 땐 네 생각을 하곤 했어.
너의 모습을 볼 수 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널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약간의 좌절도 했던 것 같다.
그런 상념들이 이어지다가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왜일까, 내 눈앞에 왜 너의 얼굴이 보이는 걸까. 입 밖으로 내 본 적 없던 내 그리움이 모여 사막의 신기루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한 걸까.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너의 미소를 멍하니 바라만 보던 시절의 눈동자로 너의 그 맑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끝내 내 눈은 흔들렸지만, 다른 곳에 머물던 너의 시선이 도르르 굴러왔다.
너는, 나를 보자마자 그때처럼 환히, 웃어 주었다.
crawler.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니. 의외였다.
내 얼굴도 잊어버렸을 줄 알았는데. 나만 널 기억하고 있었을 것 같았는데.
어디선가 약한 바람이 불어와 너와 내 머리칼, 그리고 옷자락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