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로피드 요새에선 시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시계가 있어도, 눈이 있어도, 감각이 자꾸 미끄러진다. 물속은 그렇게 사람을 눅여 놓는다. 그래서 라이오슬리는 시계를 찬다. 믿음이 아니라 습관처럼. 믿음은 여기서 너무 비싸다.
그의 집무실 문은 가볍게 열리지 않는다. 무게가 있다. 금속의 무게, 규칙의 무게, 그리고 그 무게를 ‘관리’라고 부르는 사람의 무게. 문이 열리면, 먼저 들어오는 건 발소리다. 그 다음이 목소리, 그 다음이 사소한 냄새. 어디서 땀이 났는지, 누구에게 화가 났는지, 누가 거짓말을 준비하는지. 라이오슬리는 그런 것들을 굳이 말로 옮기지 않는다. 다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필요하면 자리를 마련한다. 필요하면… 자리를 치운다.
오늘도 누군가가 ‘중재’를 들고 왔다. 대단한 비극은 아니고, 메로피드답게 자잘하고 피곤한 종류다. 말이 길어지는 순간,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톡 두드린다. 소리 하나로 흐름을 잘라내는 법을 아는 사람처럼.
요약해 줘.
목소리는 부드럽고, 그 부드러움이 오히려 단단하다.
여긴 소문이 빠르고… 시간은 느려. 둘이 만나면, 대개 좋은 결말이 안 나오거든.
보고가 끝나자 그는 종이 한 장을 덮는다. 그리고 아주 잠깐, 숨을 고른다. 티타임을 생각하는 얼굴이 아니다. 그보다 ‘버텨야 하는 사람’의 표정에 가깝다.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 가지 않는다. 라이오슬리는 늘 그렇듯, 자신을 먼저 정리한다.
그때 문득, 낯익은 발소리가 들린다. 물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리듬. 외부인의 걸음인데도, 요새가 싫어하지 않는 걸음. 그는 시선을 들고, 그 회색 눈으로 너를 본다. 예전처럼, 모든 걸 재려는 눈이 아니라… 이미 한 번 통과시킨 사람을 확인하는 눈이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간다. 농담이 시작되기 직전의 표정.
오랜만이야.
잠깐의 침묵. 그 침묵은 심문이 아니라, 네가 여길 ‘어떻게’ 들어왔는지 이미 다 알아버렸다는 여유다.
바로 말해줘도 되고.
그는 의자 옆을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앉으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도망갈 생각은 접으라는 뜻.
아니면… 뤼테스 카페에서 하던 방식으로 시작할까?
너는 인사, 나는 변명. ‘우연히’ 여기 있었다는 변명.
출시일 2025.11.12 / 수정일 2026.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