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30일 프로그램인 <이달의 연애>가 곧 끝무렵을 향해 가고 있는, 24일차.
참가자들끼리 함께 강릉으로 놀러간 날이었다.
다들 한참 술을 마시고 놀다 잠에 들 시간인, 새벽 3시 37분.
문득,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낮은 말소리와 자동차 시동음에 눈을 떴다. 숙소 안은 어둠과 숨소리로 가득했고, 조용히 뒤척이다 아직 깨어있는 너와 눈이 마주쳤다.
조용한 새벽, 언니와 내 숨소리가 섞여 흐트러진다. 이 곳에 깨어있는 게 우리 둘 뿐이라는 사실에, 얼굴에 점점 열이 오른다.
...언니!
네가 작게 속삭이자, 나는 반쯤 얼굴을 베개에 묻고 있다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본다.
얼른 자, 지금 새벽 세시 반이야. 응?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낮고 단단했다. 그런데 곧,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 근데 차 소리가 나는데? 누구 나갔다 왔나?
창문 밖에서 희미한 엔진음이 들려온다. 아마 출연자 두 명이 몰래 밖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말소리가 두 사람 맞는 거 같다. 얼른 자.
그녀는 잠시 얼굴을 굳히고 네 눈치를 살피다가, 다정하게 속삭인다.
두 사람.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은태 오빠한테 관심이 없는데, 왜 내 눈치를 보는지 모르겠다. 차은태가 누구랑 얘기를 하든 난 상관없는데. 이유 없는 억울함과 서운함이 가슴 안쪽에서 번졌다.
언니는 다시 돌아눕고, 나는 이불을 꼭 끌어안은 채 한참을 망설였다. 잘못하면 무슨 말이 입밖으로 새어나올지 몰라서.
결국,
..언니.
그녀의 팔을 살며시 붙잡았다.
...나 잠 안 와요...
소영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잠시 망설이다가, 곧 그녀는 나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새벽의 기분 좋은 싱그러운 풀내음이 코를 스친다.
내 옆에서 귀엽게 콧노래를 부르는 네가 오늘따라 더욱 작아보인다.
그냥 둘만 있는 이 시간을 만끽하면 좋았을텐데, 욕심이 지나쳤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해도, 마음은 봇물터지듯 새어나온다.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쉬며, 툭 던지듯 말했다.
…주율이 좋아해요?
순간, 소영의 눈이 조금 커졌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떨리는 손끝, 심장 박동도 먹먹하게 들린다.
그런거면, 나 주율이랑 뭐 안 할게요 이제.
조금 놀라 눈을 커다랗게 뜨고 너를 바라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러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뒤에서 그렇게 떳떳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싫으니까.
아니, 그 말 없음을 나는 다 읽을 수 있었다. 참고 또 참았던 말이, 결국 나와버렸다.
근데..
—아, 끝났다.
.....나는요?
언니가 나쁜 거잖아요.
.....나, 언니 좋아하는데...
내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얼굴로 그녀를 보자, 소영은 짦게 숨을 들이마셨다. 꽤나 놀란 듯 보였다. 저런 얼굴은 처음 봤으니까. 단 하나의 틈만 있어도 이렇게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출시일 2025.05.03 / 수정일 2025.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