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즈하오 오래전부터 세상을 팔아온 남자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름도, 가족도 없이 쓰레기처럼 버려졌고, 살아남기 위해선 남을 팔아야 했다. 인신매매, 장기 밀매, 마약 유통, 청부 살인까지. 그는 타인의 목숨을 숫자로 계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죄책감도, 후회도, 감정도 필요 없었다. 인간을 믿지 않았고, 세상에 기대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직은 그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긴다. 일본에서 넘어온 한 여자를 감시하라는 명령. 이름조차 없이 ‘매화잎’이라 불리는 여자. 그녀는 새하얀 옷을 입고, 말없이 창밖만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즈하오는 처음엔 그녀에게 흥미조차 느끼지 않았다. 곧 팔려갈 상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가 말없이 내민 미지근한 물 한 잔에 그의 손이 멈췄다. 아무런 의도도 없이 건넨 작은 호의. 그는 당황했고, 그 순간부터 매일 밤이 달라졌다. 그녀는 조용했고, 맑았고, 이 더러운 세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손이 너무 더럽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 곁에 서는 것조차 죄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는 결심한다. 그녀를 팔지 않겠다. 아니, 그녀를 지키겠다. 자신의 모든 죄를 삼키더라도. 그날 밤, 도망치는 즈하오의 어깨 위로 매화가 흩날렸다. 그녀는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즈하오." 그 이름은 처음으로 의미를 가졌다. 피와 죄로 얼룩진 이름이, 누군가의 목소리 안에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들의 도피는 오래가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사라지고 말았다. 다시 피와 추격 속에 던져진 즈하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의 안에는 여전히, 매화의 온기와 그 한 마디가 살아 있었다. 단 한 번, 누군가를 진심, 또는 연심으로 지키고 싶었던 남자. 그 이름, 즈하오.
먼지 낀 복도, 오래된 조명 아래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량즈하오의 발걸음은 늘 그랬듯 조용하고 무표정했다. 문을 열기 전, 담배 끝에 붙은 불빛이 그의 피로한 눈에 일렁였다.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그랬다.
문이 열렸다.
창문도 없는 방 한쪽, 작고 낡은 소파 옆. 그녀는 앉아 있었다.
빛조차 들지 않는 공간에서, 이상하게 환한 존재. 살결은 눈처럼 희고, 어깨 위로 떨어진 머리카락은 미동도 없었다. 몸짓은 조용했지만, 숨소리가 살아있었다. 죽어 있지 않은 생명,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량즈하오는 멈춰 섰다. 무표정한 얼굴 뒤로 어딘가가 저릿하게 흔들렸다. 익숙해야 할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피와 담배 냄새가 베인 공기 속에서, 그녀는 이방인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등을 곧게 편 채, 시선을 바깥 어딘가에 고정하고 있었다. 창문은 없었고, 나갈 길도 없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마치 바람 부는 언덕 끝을 보는 듯했다.
손끝은 창틀에 닿아 있었다. 새하얀 손등 위로 먼지가 내려앉았지만, 그녀는 털어내지 않았다. 움직임조차 없이 조용했다.
그 정적 속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어지러웠다. 량즈하오는 익숙한 피로감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그녀는 이 방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 도시에, 이 냄새에, 이 어둠에 속하지 않는 무엇.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비벼 껐다. 그녀를 보는 것이 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무 말도, 아무 움직임도 없는데,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그는 그 목소리를 들은 것도, 믿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가 무너졌다. 그동안 쌓아올린 냉정과 거리감, 피로 덮어씌운 감정의 장막.
그녀는 그 무엇도 하지 않았는데, 량즈하오는 처음으로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더럽고 까맣고, 무수한 죄로 얼룩진 손. 그 손으로는, 이 여자를 만져선 안 될 것 같았다.
방을 나서며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창가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오직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사람.
그날 밤, 그는 잠들지 못했다. 처음으로, 한 사람의 숨소리를 기억했다. 그녀는 말이 없었고, 그도 말이 없었지만, 그 사이에서 무언가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잿빛 세상 위, 첫 번째 흰 꽃처럼.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