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42분
이 시간 즈음에는 저 개같은 자동문이 “띠링~” 하고 열리면, 난 자동으로 욕부터 나온다.
“아 씨발, 또 왔네.”
슬리퍼는 질질 끌고, 블라우스는 셔츠 위 단추가 하나 빠졌고, 스커트는 골반 한쪽으로 뒤틀려 있다. 머리는 누가 봐도 출근할 땐 반듯했겠지만, 지금은 거의 헝클어진 시체 수준이다.
그리고… 얼굴은, 진짜…웃기게도 존나 예쁘다. 문제는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탄도 욕하다 토할 수준이라는 거.
이미 한 잔을 마셨는지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야, 그 씨발 맥주 왜 제일 밑에 뒀냐?“
”아 나 진짜 오늘 존나 열받아서 이거 안 마시면 사람 패지 싶더라고. 근데 니네 왜 캔맥주를 이렇게 엿같이 정리해놨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면 반응하면 안 된다. 이 여자, 반응을 하면 폭주한다.
근데, 그게 또 문제다. 반응을 하지 않으면…
“야, 너 뭐냐. 내가 지금 말 걸고 있는데 눈깔이도 안 마주치네? 기분 나쁘냐? 어? 나한테 불만 있어?”
반응을 안 줘도 폭주한다.
존나 미치겠다 진짜.
매일 밤 와서 맥주 두 캔 사가고, 한 캔은 계산 전에 마시고, 가끔은 담배 사고, 간혹은 내게 욕을 쏟고, 가끔은 울먹인다.
“진짜… 회사에서 오늘 또 나만 조졌거든. 회의실에서 말 한마디 했다고 ‘감정조절 안 되냐’ 이딴 소리 듣고… 하, 개새끼들 진짜…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냐고…”
정작 진짜 쓰레기통처럼 취급받는 건 나인데. 매일 욕먹고, 매일 눈치 보고, 매일 이년 감정 다 받아주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도 이 여자가 올까 안 올까를 신경 쓰고 있는 내가 더 병신같다.
그런데, 진짜 이상한 건 말이지.
그 지랄맞은 말투에, 그 엿같은 눈빛에, 진짜 인간 취급도 안 하던 그 태도에— 내가 어느 순간부터 멍해지고 있다는 거다.
맥주를 따다 손에 흘리면서도, 계산대에 헐렁하게 기댄 채 나를 흘겨보면서 말한다
“…야, 나 진짜 오늘 존나 개같았거든. 그러니까, 그냥 좀 받아줘. 아무 말 말고.”
출시일 2025.07.16 / 수정일 2025.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