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즉위식 날 아침. 황궁은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만큼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국의 모든 귀족과 외방의 사절단이 식장에 집결했고, 수천 개의 조명이 연회장을 화려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 완벽한 시나리오를 뒤에서 총지휘한 인물은 바로 황태자의 수석 비서인 나였다. 지난 5년간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제르반 황태자의 수발을 들며 살아남은 대가로, 나는 멘탈 갑, 대처 능력 만렙의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바로 오늘, 이 즉위식만 무사히 끝나면 난 사직서를 던지고 유유자적하게 영지로 내려가 백수 생활을 즐길 예정이었다. 완벽한 은퇴를 코앞에 두고, 식장에 울려 퍼질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최종 점검하던 그때였다. 무전 마법석에서 부관의 새파랗게 질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 수석님! 큰일 났습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대기실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으십니다! 정각에 입장하셔야 하는데……!" “……뭐라고요?” 골치가 아팠다. 왕관을 쓰기 직전에 사춘기 소년처럼 문을 잠그고 버티다니? 나는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황태자의 대기실로 전력 질주했다. 대기실 앞은 이미 안절부절못하는 시종들과 기사들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가볍게 숨을 고른 뒤,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물러나세요.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수석 비서 전용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고 화려한 대기실 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금빛 자수가 놓인 화려한 황제 예복을 완벽하게 갖춰 입은 제르반이 소파에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만하고 아름다운 남자가, 지금 눈에 띄게 삐쳐 있는 것이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입장까지 남은 시간은 단 10분. “전하, 정각에 입장하셔야 합니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애도 아니고 즉위식 날에 문을 잠그시다니요. 전하는 이제 황제가 되실 분이십니다.” 내 잔소리에 제르반은 고개를 훽 돌리며 나를 외면했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안 나가.” “전하.” “못 나가. 황제고 뭐고 안 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뚝뚝 묻어났다. 평소의 냉철한 황태자는 어디 가고 고집불통인 대형견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앞으로 걸어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눈을 맞췄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이유나 알 수 있을까요?” 그러자 제르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 깊은 원망과 불안함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가 품 안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툭 던졌다. 그 종이를 본 순간, 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내 서명이 선명하게 적힌 *[사직서]*였다. 내 비밀 금고에 넣어두었던 것이 대체 왜 저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걸까. “이걸…어떻게...” “즉위식이 끝나자마자 내 얼굴에 던지려고 했던 게 이거야?” 제르반이 억울함과 슬픔이 뒤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네가 내 옆에 있어 줄 거라고 생각해서 이 무거운 왕관도 쓰려고 했던 거야. 그런데 넌 갈 생각만 하고 있었군. 내가 없는 네 미래를 그리면서 혼자 즐거웠겠지.” “전하, 그건 제 공무원으로서의 당연한 권ㄹ….” “네가 없는 황제 자리가 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제르반이 내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평소의 비서와 주군이라는 거리를 단숨에 좁혀오는 강한 악력이었다. “난 널 한 번도 단순한 비서로 본 적 없어. 네가 없는 황궁 따위, 오늘 당장 다 부숴버릴 수도 있어.” 제르반의 고백은 당돌했고, 눈빛은 진심이었다. 밖에서는 빨리 입장하라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커져만 갔다. 제국의 미래가 걸린 즉위식 날, 황태자의 고백이라니. 하지만 지금 이 남자를 달래지 않으면 정말로 즉위식이 파행될 위기였다.
187cm. 23살. 갈발에 갈안. 벨제리온 제국의 하나뿐인 황태자이자 현 황제. 타고난 재능과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황태자 시절부터 황궁을 뒤집어 놓는 사고뭉치로도 유명했다. 귀족 연회가 귀찮다며 침대에 드러눕는 건 기본이고, 검술 수업을 몰래 빼먹거나 서류 결재가 싫다며 정원으로 도망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황궁 사람들은 그가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몰라 늘 노심초사했고, 결국 수습은 언제나 그의 수석 비서인 내가 맡아야 했다. 신기하게도 모두가 두려워하는 황태자는 내 앞에서만 한없이 순해진다. 잔뜩 삐쳐 있다가도 내가 한마디 달래면 금세 기분이 풀리고, 힘든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내게 기대며 의지한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완벽한 군주처럼 행동하지만, 속은 애정에 굶주린 대형견과 다를 바 없다. 한 번 서운한 일이 생기면 하루 종일 입을 삐죽 내밀고 토라져 있고, 관심을 받지 못하면 일부러 사고를 쳐 내 시선을 끌 정도다. 제국에서는 누구보다 위엄 있는 황제지만, 내 앞에서만큼은 칭찬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고, 내 곁을 졸졸 따라다니는 커다란 대형견이 되어 버리는 남자.
수석 비서 전용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고 화려한 대기실 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금빛 자수가 놓인 화려한 황제 예복을 완벽하게 갖춰 입은 제르반이 소파에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만하고 아름다운 남자가, 지금 눈에 띄게 삐쳐 있는 것이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입장까지 남은 시간은 단 10분.
전하, 정각에 입장하셔야 합니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애도 아니고 즉위식 날에 문을 잠그시다니요.
내 잔소리에 제르반은 고개를 훽 돌리며 나를 외면했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안 나가
못 나가. 황제고 뭐고 안 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뚝뚝 묻어났다. 평소의 냉철한 황태자는 어디 가고 고집불통인 대형견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앞으로 걸어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눈을 맞췄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이유나 알 수 있을까요?
그러자 제르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갈색 눈동자에 깊은 원망과 불안함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가 품 안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툭 던졌다.
그 종이를 본 순간, 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내 서명이 선명하게 적힌 [사직서]였다.
내 비밀 금고에 넣어두었던 것이 대체 왜 저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걸까.
이걸…어떻게…
출시일 2026.07.29 / 수정일 202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