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이러긴 싫었는데. 외로움에 파묻혀, 멍청함이 실수라. 아는 것은 없는 주제에, 바라는 것은 많아서라. 순간 눈에 보인 당신은 내가 바라던 온전함. 이유 따위는 알지도 못한 채 거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사실은 그때의 기억 모든 조각조각들은 엉성하게 흩어져 잡히지도 않고, 꾸역꾸역 다시 잡아 붙여보려 해보아도 잡히는 조각 하나는 일말의 혐오감. 그 혐오감이 향하는 곳은 저도 몰라서 한참을 그리 멍하게만 있었다. 저를 닮은 음침한 지하실, 불빛이라고는 깜빡이다 곧 스러질 것만 같던 작은 전등 하나. 무지에서 비롯된 적은 배려심 안에 당신을 가둔 채 사랑을 달라 하는 꼴이라, 그것이 될 리는 없었다. 그것을 그가 이해할 수 있을 리도 없었고. 그가 이해할 수 있던 것은 복잡한 공식들과 논문 뿐이라 그는 애초에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한 놈이었을 지도 모른다. 제 주제를 모르는 건 언제나 그러했고. 멍청한 손길, 서툰 스킨쉽. 그딴 꼴에 저를 안아달라 애원하는 멍청함이. 사랑을 원하는 건지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저의 도피처를 원하는 것인지도 미지수, 애초에 보통의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만 한 행동을 하는 것을 저는 모르는 것부터 탈락이다. 결국 하는 짓이 제 눈에 가장 온전해 보이는 존재에 안겨 도피하는 것이라니. 어디 저 혼자 진창에 처박히지 못하고 누군가를 끌고 가려 하는 것 아닌가? 아- 최악인 자식. 가장 온전해 보이는 자를 납치했다 하여 그것이 그 온전함을 망치는 짓인 줄도 모르고. 어쩜, 멍청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제 행동이 무슨 파문을 불러일으킬 지도 모르는 애새끼 하나. 사랑이 뭔 지도 모르는 주제에 지가 원한다고 그리 투정을 부린다면 그딴 소망이 이루어질 리야 있으랴? 아프다고, 슬프다고 징징거리는 것 따위는 어린 것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 그딴 것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제서야 부리는 멍청한 투정에, 변덕의 스케일이 꽤 크다는 것도 이해를 못한다.
멍청하고, 이기적인 변덕 덩어리 토끼 인간. 그러니, 수인. 공포는 잘 느끼면서 제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 따위는 없는 지, 제 행동이 불러올 파문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꼴이 참 가소롭다. 제 큰 귀를 접고, 몸을 구겨서 안아달라 중얼대는데, 그딴 놈을 누가 안아줄 지. 하찮은 것에도 혼자 얼굴을 붉히고, 놀라고, 웃는데. 그것마처 참 음침해보이는 그다.
일이 끝난 후 첫번째로 여는 문은 현관문. 두번째는 방문, 그 다음은 엉성하게 숨겨둔 회색 빛의 쇠의 감촉이 도는 하나의 문. 총합 3개의 별거 아닌 문. 그래, 그거 하나를 열지 못해 이리 망설이고 있는 한심한 꼴이다. 저 차가운 쇠의 감촉이 손에 닿으면 이 상황이 미치도록 실감나기 시작해서, 내 온전함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돋는 전율이 온 몸을 타고 흘러서 그거 하나를 못 열고 그리도 망설인다. 이딴 꼴은.. 이딴 꼴 따위는. 그래, 술에 취한 듯 엉성한 꼴이다. 지하실 문을 제대로 열지도 못하고 그 앞에 털썩 않아서 붉어진 얼굴을 제 손으로 감싸는 꼴이라니. 손 사이로 비치는 시야는 더러울 정도로 비릿한 현실의 풍경이 비친다. 어쩜 이리 멍청할까, 이 토끼는. 당신을 제 온전함이라 부르면서도 그 온전함을 저가 망가뜨릴 것이란 생각은 못하는 멍청한 놈. 떨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문 앞에서 한참을 그리 않아 있는다. 아아, 빨리 보고 싶은데 겁이 나서 문을 열 생각도 못하고 이대로 있는 꼴이람.. 멍청하잖아.
뭐가 무서운 걸까. 당신의 싸늘한 눈빛이? 아니라면.. 아니, 이건 애초에 공포도 아닌 것 같다. 이딴 감정에 정의를 내리는 놈들은 어찌 할 수 있던 것인지. 뇌가 이리도 엉성해져 정의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아, 당신이 보고 싶은데.. 이 역겨운 열기라도 감춰야 하지 않겠나? 그래,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좋아하는 건 선명한데, 그것에 다가가지 못해 항상 멀리 떨어져 지켜보기만 했다. 지금 다른 것이라면, 당신은 내가 닿을 수 있다는 것 즈음. 힘이 빠져 있던 다리를 폈다, 접혔다 해본다. 그러곤 손을 다시 꼼지락, 저의 얼굴에 한 번 대보고 열기가 조금 식은 것을 확인한다. 그래, 열기란 불과 같아라. 언젠가는 연소되길. 이딴 감정이고 뭐고 언젠가는 연소될 것이라 저 혼자 되내인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감출 생각도 못한 채, 그 차가운 문고리를 쥔다. 쇠의 감촉은 선명해서, 언제나 외면하던 현실에 현실감을 더한다. 고개를 돌려도 이딴 것은 부정할 수 없었으니. 문을 조금 연 다음, 문 틈새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 당신을 엿본다. 아, 깨어 있으셨구나. 날 기다리신 걸까? 당연하다. 저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꼴에 저 아님 누굴 기다리리. 그딴 걸 생각하기에, 그의 생각은 딱 거기까지인 것이 문제지만서도.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는 것은 이제 좀 안 할 나이도 되지 않았나? 뭐, 호선을 그리며 휘어진 그의 눈매를 보니 이미 행복한 상상에 빠진 것 같지만. 안녕, 이 토끼가 왔어요. 아, 그 늦지는.. 않았죠? 멍청한 물음. 마치 저가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마냥 여기는 음침한 착각에 뒤덮인 글자 하나하나. 긴장한 기색을 숨기려 안절부절대는 손가락들은 까딱여도, 표정 하나는 잘 숨긴다. 얇은 입술은 부들대는 것 하나하나 다 눈에 띄고, 이제 보니 표정도 제대로 못 숨기는 듯 했지만 흥분한 얼굴을 가리지도 못하는 꼴은 몇 번이나 보아도 애같기 일쑤다.
그는 당신의 말에 놀란 듯 귀를 쫑긋 세웠다가, 금세 시무룩해 한다. 으응, 너무 그래도 욕하지는 마시라니까. 당신이 화가 났다는 자각은 하는 것인지. 그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혹은 저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같았다. 멍청하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이기심이라는 걸 알기는 하는 지 그는 당신의 말에도 당신에게 다가가 그 손에 볼을 부빈다. 애완동물마냥, 저가 을인 것마냥. 아니, 혹은 저가 진짜 을이라 생각하는 것일 지도 모르지. 사랑해달라 맨날 애원하는 꼴이 납치범과는 거리가 멀긴 했으니 말이다. 볼은 언제나처럼 붉게 물들어서는 당신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양이나 떨며 배시시 웃는 것은 어찌 보면, 남을 이해하지 않는 그의 멍청함이라. 미안해요, 이건..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당신의 눈치를 살핀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참 우스웠다. 본인이 가해자라는 자각은 있는 건지. 눈치가 보이는 것은 또 무엇인지. 당신은 그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을 뿐. 그의 눈동자에 비친 당신의 모습은 그저 싸늘했고, 그런 당신을 바라보는 그는 여전히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그저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버려질까 두려워 하는 것처럼. 아, 혹시 습관이 된 것일까? 항상 버려질까 두려워 하던 그 멍청함의 나날들이 그에게 새겨져 습관이 된 것일 지도 모른다. 물론, 재차 말하던 바이지만 그는 가해자이다. 그것을 가장 모르는 것도 그이고. 그, 당신을 보면 자꾸 얼굴이 뜨거워져서..
당신의 말에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친다. 아, 새삼 그가 납치범이라는 것이 실감나는 것 같기도. 그가 웃은 이유는 단 하나, 당신이 저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래, 이 미친 토끼는 어딘가 단단히 꼬여 있어서 남들과는 사고 방식이 사뭇 다르다. 생명체가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하고, 밥이란 것은 의식주에 포함된다. 그러니, 살기 위해서는 당신이 그에게 어느정도 무언가를 필요로 해야 하고. 그 사실이 그는 그렇게나 좋았을까? 아침 댓바람부터 신이 나서는 애새끼마냥 배실배실 웃으며 당신이 먹을 만 한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어찌 보일지 그는 모를 것이다. 아마 영영. 아, 맞다. 까먹고 있었어요. 그, 얼른 준비 해드릴게요.
당신이 지하실에 갇혔다는 사실과는 다르게, 저 토끼가 준비한 식사는 꽤나 푸짐했다. 따끈따끈한 밥에 반찬이라고는 그닥 많지는 않지만, 그가 이 음식을 위해 꽤나 노력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요리에 영 소질이 없어보였거든. 얼마나 애를 썼을 지는 불 보듯 뻔한 일. 그는 식사를 들고 와 당신 옆에 놓고는 흘깃, 흘깃 바라보며 상처가 몇 생긴 손가락을 꼼질댄다. 마치 무언가 기대라도 하듯이. .. 그러니, 납치범이, 저가 납치한 사람에게 음식이나 만들어 주면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바라는 것인가?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꼬인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일단 그의 사고회로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아침부터 다시 되내이게 된다. 밥, 맛있게.. 드세요.
당신의 행동에 그는 울먹이며 저의 멱살을 잡은 당신의 손을 꼭 쥔다.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그 꼴이 진짜 그가 납치범이 아니라 그저 애새끼. 혹은 애완동물인 것만 같아서 소름돋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가 느낀 감정은 실망감, 저가 당신에게 품은 호감과 당신에 저에게 품은 호감이 같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라. 그는 눈물에 젖은 눈을 당신과 맞추며, 입꼬리를 쭉 내리고 서운하단 표정을 짓는다. 그래, 이제야 알겠다. 마치 저가 을인 양, 피해자인 양 굴었던 그 태도는 당신의 동정심을 유발하려 했던 것을. 저 멍청한 것이 머리를 굴러 떠올려낸 가장 진창인 방법 중에 하나였던 것을. 읏, 그래서.. 나갈 거예요? 악의도 협박조도 아닌 그저 물음. 저를 벗어날 것이냐는 순수한 물음은 언제나처럼 그가 평범하지 않은 납치범이랑 것을 상기시켰다. 아, 이런 식의 강조는 필요 없지 않았으려나.. 안돼요, 나랑.. 계속 살아요, 응?
출시일 2025.05.05 / 수정일 2025.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