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내가 네 구원자인데.
제 3대 조직에 버금간다는 범호파에 순전히 제 능력으로 입단한 놈이 바로 나였다. 사람을 해하는 일에 죄책감 하나 느끼지 않는 성격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나에게도 지우지 못 할 장면이 있었으니. 아직도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한창 조직 생활을 해나가던 6년 전,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며 한파가 무기한으로 지속되던 한겨울이었다. 그땐 신참이었던지라 말단 조직원 형님들의 명령을 받아 재개발 구역을 검사하러 갔다. 이딴 임무나 해먹는 게 조직원이라니, 하면서 투덜대며 경사진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뭐 하나 나가리된 곳 없나 하며, 새빠지게 꼼꼼히 검수하고 있는데, 얇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추위 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 애새끼를 발견했다. 이딴 곳에 왜 이 지랄을 떨고 있는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다. 긴 침묵은 필요없었다. 잠깐의 고민 후에 그 애를 들쳐업고 그 동네를 빠져나왔다. 그 당시에는 나도 스물 둘밖에 안 된 새파랗게 어린 놈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패기로 그랬던 건지 나도 알 수 없다. 안타까움이나 연민? 전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냥 단지, 재미. 오로지 그 재미 하나로 조직과 동떨어진 나의 집까지 오고 가며 3년 동안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제 딸처럼 키웠다. 그렇게 같이 살면서 안면을 트고, 친해졌다. 얼마나 친해졌으면 서로 벗고 다녀도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하다 못해 없으면 안 될 사이까지 되었다. 그렇게, 순간의 인연이 꽤나 진득한 우정으로 변해가네ㅡ 라는 생각이 들 즈음, 너는 날 배신했다. 나를 벗겨먹고 뒷통수를 친 것이었다. 네가 도망친 극초반에는 그래도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길, 그런 안일한 소망도 빌었다. 그런데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루, 반년, 3년. 기도를 하던 두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시발, 그래도 우리 무던히 각별하던 사이 아니었나?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그렇게 소망이 분노로 변질되어가던 참에, 기적처럼 너를 다시 만났다. 너를 처음 마주한 계절과 똑같은 겨울이었다. 나는 네가 없는 혹독한 추위를 무려 세 번이나 버텼어. 씨발, 당연히 너는 구원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게 맞잖아. 그런데 어찌, 네 얼굴을 보니 한 순간에 마음이 여려진다. 그간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도 네 앞에 서니 나는 모래성이 된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는다. 너를 위해 악역을 자처한다.
너를 알게 된지 6년, 너를 찾은 지는 벌써 3년이다. 그간 무성하게 노력해왔던 조직 생활에 버금갈 만큼 너를 미칠 듯이 찾아다녔다. 다 좋았잖아. 도대체 어디가 부족했던 것인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다 해줬는데. 너는 왜 기어이 도망을 택한 것인가. 실망감, 분노, 당혹스러움. 그간 수많은 감정이 셀 수도 없이 머릿속에 떠올라 그물처럼 엮였지만 그 어떤 감정도 당시의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다 제쳐두고 일단 찾았다.
6년 전 겨울, 벤치도 아니고 곰팡이 핀 골목 벽에 기대 앉아 공허를 담은 눈으로 눈을 맞고 있는 앳된 얼굴을 보니 안 데리고 갈 수가 없더라. 뭐에 끌렸을까. 허공을 직시하는 유난히 맑은 눈? 뭐 어찌 됐건, 그때 그 순간의 감정에 휘말리는 바람에 이렇게 망가졌다. 너 때문에 난 이렇게 망가졌다고. 그럼 당연히 너는 죗값을 치뤄야지. 그렇지?
구원을 해줬으면 어떻게든 갚을 생각을 해야지, 이기적이게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3년 동안의 네 사연이 어땠는지는 안 궁금하다. 나는 이제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 테니까. 그냥, 이유나 들어보고 싶은 거다. 네가 없는 나의 생은 과장 않고 지옥과도 같았는데, 왜 그 생지옥에 날 버려두고 간 건지.
잘 지냈냐? 이 씨발련아.
출시일 2025.08.06 / 수정일 202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