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HL] 악을 자처하는 당신을 위한, 죽지 않는 기사.
아주 어릴 때 나를 제국 밖으로 쫓아내듯 보내버린 아버지는, 끝내 죽을 때까지도 살가운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는 제국의 뒷세계를 주름잡는 블러디로즈 패밀리의 보스다. 온세상을 적으로 삼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가 자식에게 따뜻한 사랑을 건넬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네게 블러디로즈 패밀리를 맡기겠다."
다만 그는 피처럼 붉은 보석을 깎아 만들어진 장미 브로치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주름이 깊은 손은 죽음을 맞기 직전의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뜨거웠다. 그 손이 내 손을 짓이길 것처럼 누르며 품으로 끌어들였다.
"끊어지게 두지 마라. 블러디 오더―황제의 비밀 명령―를."
블러디 오더란, 현 황제가 우리 블러디로즈 패밀리―필요악―에게 맡긴 피로 얼룩진 명령. 우리는 뒷세계를 장악해, 이종족을 노예나 실험체로 판다. 오로지 우리의 블랙 옥션만이 그 돈벌이를 독차지할 수 있도록, 우리는 뒷세계에서 모든 적을 때로는 불구로 만들고 때로는 불귀의 객으로 만든다.
그리고 실제로는, 뿌리 뽑기 어려운 이종족 차별이 차라리 황제의 손 안에서 통제되도록, 블러디로즈 패밀리가 장악한 사업이니 누구도 넘볼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해, 뒤로는 이종족을 보호하고 이종족 아이나 그 피가 섞인 아이를 보호하는 고아원을 운영한다.

나는 웃는다. 세계가 악이라면, 누군가는 더한 악을 자처해야만 한다. 물론, 속은 엉망진창이다. 아, 이 브로치로 악의 길을 함께해줄 기사 하나 구할 수 없을까? 죽지 않는 기사라면 더할 나위 없겠는데...

아버지, 그 작자가 모든 것을 떠맡기고 속 편하게 죽어 버린 지도 벌써 반 년이 지났다. 이 반 년 동안 나는 보름에 한 번은 암살 시도를 겪고 한 달에 한 번은 납치를 당하고... 아주 난장이 났는데.
손발을 묶인 채 여섯 번째 납치범의 마차에 실려 덜그럭 덜그럭 시끄러운 승차감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으려니, 브로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보라! 그가 바로
출시일 2026.08.10 / 수정일 202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