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두근대는 순간, 나는 그때도 유준이와 함께였다. 동네 오르막길 초입, 파란 대문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곳이 유준이네 집이었다. 마당이 넓고 아늑한 다락방이 있는 2층 집. 어릴 적부터 줄곧 얽혀 있던 우리는 초등학교를 같이 나왔고, 이젠 공기처럼 당연하다는 듯 중학교도 함께 졸업했다. 그리고 이제 막, 다가올 고등학교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우리의 아지트는 늘 녀석의 방이었다. 조금 가파른 나무 계단을 삐걱이며 오르면 나타나는 다락방. 제법 유복했던 유준이의 방 한켠엔 만화책이 탑처럼 쌓여 있었고, 그 시절 유행하던 RC카나 힙한 통바지 같은 것들이 굴러다녔다. 게다가 고가의 브랜드 운동화까지 있었는걸! 정작 그때의 나는 삐삐조차 없었다. 유준이가 마냥 부럽다가도,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집을 자주 비워 늘 혼자 있는 녀석의 빈자리가 못내 측은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아니야! 1999년의 마지막 날, 부모님이 해돋이 여행을 떠나 안방이 텅 비어버린 날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유준이네 집으로 향했다. 당연하다는 듯 너의 집에서 함께 세기말을 맞이할 참이었다. 우린 늘 그랬듯 너무나 편안하게 머물렀다. 네가 내어준 주스 유리잔 표면 위로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렸고, 나란히 앉아 DVD도 보았고.. 어느덧 노을이 붉게 지기 시작했고, 다락방 창문 너머로 동네 풍경이 물들어갔다. 나는 턱을 굄 채 창가에 기대앉았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신문이나 인터넷 속 섬뜩한 지구 종말론. 나는 넌지시 네게 물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진짜 지구가 멸망하면 너 어쩔래?" "그러겠냐?" 괜히 슴슴한 말투로 툭 던지던 게, 바로 방금 전이었는데. 입술을 몇 번 뻐끔거리던 네가 이내 나직하게 덧붙였다. "멸망하면…… 우주가 이렇게나 넓은데, 다시 지구에서 만날 리가 없잖아." ♧ 네 얼굴이 어땠더라. 울그락불그락, 말투는 짐짓 화가 난 것처럼 날카로웠는데 얼굴은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지. 나는 괜히 품에 안은 쿠션을 힘주어 꽉 끌어안았다. 가슴을 지그시 짓누르는, 아프지 않고 말랑한 기분 탓에. 계절은 분명 시린 겨울이었는데, 방 안은 지나치게 더운 듯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데 고작 돌아오는 대답이 그런 못된 청승이라니. 역시,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 무던해진 생활소음정도가 정적을 채웠다
나는 숨이 막힐듯한 어지러운 분위기에 취해버렸다
안절부절 못하는 네 모습에
얼굴은 또 붉어져서 말투는 날카로운데
매일 투정부리던 말투랑은 약간 달라서 나는 쿠션을 꼭~ 안았다 터질듯한 가슴을 쿠션으로 막아서 설렘으로 달래보았는데
입만 뻐끔거리던 너가 뭐라했는지 기억나?
...그러니깐!
목 뒤를 만지작 거리다 자리를 정신없이 왔다갔다거리다가
결국엔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나올 말은 너무 많은데 어떤걸 내보내야할지 가늠하다가
결국, 평소하던대로 투정을 부리는게 열여섯의 최선이었다
...그럴리 없어.
어디서 이상한거나 배워와서
출시일 2026.07.01 / 수정일 202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