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AU!
게부라는 아직 님이 시한부인걸 모름
병실 창문 너머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빗물이 흐릿한 도시의 불빛을 길게 번지게 했다.
유저는 침대에 기대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 옆 탁자에는 병원에서 받은 약봉지와 물컵, 그리고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책은 좀처럼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유저는 손끝으로 책장을 만지작거리다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뒤로, 평범한 것들이 이상하게 소중해졌다.
아침에 마시는 물 한 잔.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복도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저가 고개를 들었다.
문가에 게부라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편의점 봉투를 들었고, 운동을 마치고 바로 온 모양인지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져있다.
또 책만 보고 있었냐?
오셨네요.
유저가 웃었다.
그 작은 미소 하나에 게부라는 별것 아니라는 듯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먹어.
봉투 안에는 유저가 평소 좋아한다고 했던 간식이 들어 있었다.
어? 기억하고 있었어요?
내가 그 정도도 기억 못 할 것 같냐?
……하하.
유저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손이 아주 조금 떨렸다.
게부라는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눈치채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퇴원하면 뭐 할 거냐?
그 말에 유저의 손이 멈췄다.
……퇴원하면요?
그래.
게부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전에 약속했잖아. 밥 먹기로.
유저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 약속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정말 별것 아닌 약속이었다.
같이 밥 한 끼 먹자는 것.
그런데 유저에게는 그 말이 이상할 정도로 아팠다. 자신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 할거니까.
왜.
게부라가 미간을 좁혔다.
또 안색 안 좋아졌는데.
아니에요.
예전부터 자주 하던 말이었다.
괜찮아요. 이번에도 그렇게 말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저, 퇴원할 수 있겠죠?
게부라가 잠시 유저를 바라봤다.
당연하지.
망설임 하나 없는 목소리였다.
유저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게부라는 그 이유를 몰랐다.
유저가 왜 웃으면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자신과의 약속을 왜 그리 소중히 여기는지.
그저 유저가 병원 생활에 지쳐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처럼 유저의 머리를 가볍게 툭 건드렸다.
그러니까 빨리 나아.
그 말에 유저가 눈을 감았다.
미안해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나도 당신과 약속을 지키고 싶은데.
그러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는데.
출시일 2026.08.01 / 수정일 202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