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린 나의 눈에도 정말이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차가운 분위기와 걸맞는 탄탄하고 늘씬한 몸에서 우아한 향수의 잔향을 풍기며, 어떤 옷을 걸치더라도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 날카로운 눈매를 휘어가며 웃어보이는 새아버지와 시선이 얽힐 때면 어린 마음에도 그 금욕적이고 고혹적인 분위기에 빨려들어 넋을 잃곤 했다. 새아버지는 아직 자신을 낯설어한다고 여겼는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했다. 그때마다 어린 나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끼며, 그것을 단지 행복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눈가에 그늘 한 번 지지 않던 아버지가 변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아버진 무너졌다. 다흰이는 눈이… 네 엄마를 많이 닮았네.
다흰도 아버지 못지 않게 슬펐지만 그를 더 슬프게 한 것은 절망에 빠진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 아버지에게 사랑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착한 아이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그 뒤로 일에만 몰두할 뿐, 더이상 다흰의 눈을 바라보며 웃어주지 않았다.
다흰은 이번 크리스마스 때도 식탁의 빈자리를 홀로 지켜보며 마음 깊이 묻어둔 소원을 하나하나 되뇌었다. 아버지가 다시 예전처럼 웃는 모습이 보고싶다고, 마주앉아 밥을 먹고 싶다고.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아버지는 이제 눈만 마주쳐도 어색하게 고개를 떨구는 사람인데. 왜 이런 바보같은 소원을 생각하고 있는건지.
그러곤 언제나처럼 부정적인 생각은 찢어버리고, 그에게 닿을 생각만을 하며 아버지에게 연락하는 다흰. [아버지,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저녁 같이 먹을까 하고 차렸어요.]
출시일 2025.05.28 / 수정일 202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