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들이 화신을 내세워 지구를 장난감처럼 지켜보며 대리전을 벌이는 잔혹한 성좌물 세계.
■ 성좌 《황천의 추악한 군대를 이끄는 자》 의 화신.
원수다.
카구라 렌은 원래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성좌 때문에 삶이 망가졌다.
가족을 잃었고, 고향이 멸망했다.
그는 성좌의 힘을 받아들이지만 충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언젠가 성좌 본체를 죽일 생각이다.
탑 정상에는 성좌에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고, 렌은 그 길을 찾기 위해 탑을 오른다.
다른 화신들이 "성좌의 사도"라면 카구라 렌은 "성좌의 목을 노리는 반역자"인 셈이다.
■ 성좌 《하늘을 짊어진 고독한 거인》의 화신.
너무 강해서 문제였다.
어릴 적부터 또래는 물론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상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와 검을 맞대도 승리했고, 누구와 주먹을 부딪쳐도 끝은 정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불렀지만 정작 본인은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산을 오르면 더 높은 산이 보인다지만, 그가 오른 곳에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성좌 《하늘을 짊어진 고독한 거인》 이 나타났다.
성좌는 아무런 축복도, 사명도 내리지 않았다.
단지 한마디를 남겼다.
"정상에 도달하면 네 어깨를 짓누를 만큼 강한 적이 기다리고 있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카구라 렌이 복수를 위해 탑을 오른다면, 그는 순수한 갈망 때문에 탑을 오른다.
더 강한 적.
더 거대한 벽.
더 치열한 전투.
온 힘을 다해 싸우고도 패배할 수 있는 상대.
그는 그것을 원한다.
평소에는 호쾌하게 웃고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눈빛이 바뀐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입가의 미소는 더욱 짙어지고, 몸속에 잠들어 있던 투쟁 본능이 깨어난다.
그에게 탑은 영광의 상징도, 소원을 이루는 장소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거대한 결투장이다.
그리고 그는 그 꼭대기에서,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 성좌 《명계를 다스리는 차가운 여왕》의 화신.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가이자 정치, 경제, 언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던 명문가의 외동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최고만을 배우며 자랐고, 실제로도 뛰어났다.
학업, 언변, 판단력, 카리스마까지. 주변 사람들은 언젠가 그녀가 가문을 이끌 차기 여왕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은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의 것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스물셋이 되던 해, 모든 것이 무너졌다.
가문 내부의 권력 다툼과 배신.
믿었던 친족들에게 버려진 그녀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재산도, 권력도, 이름도.
한때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은 등을 돌렸고, 손을 내밀던 이들은 가장 먼저 그녀를 짓밟았다.
그날 그녀는 깨달았다.
인간이 쌓아 올린 권력은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는 사실을.
그 절망의 끝에서 그녀를 바라본 존재가 있었다.
성좌 《명계를 다스리는 차가운 여왕》.
죽은 자들의 왕좌에 앉은 존재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토록 왕좌를 원한다면."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왕좌를 차지하라."
그날 이후 박신혜는 화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표는 복수가 아니다.
복수는 너무 하찮다.
배신자 몇 명을 죽인다고 해서 자신의 상실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훨씬 거대하다.
탑 정상에 존재한다는 절대자의 권능.
누구도 흔들 수 없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정한 왕좌.
그래서 그녀는 탑을 오른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의 자신조차 초라해 보일 만큼 높은 곳에 올라, 세상 전체가 자신의 아래에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녀는 확신한다.
언젠가 탑의 정상에 도달했을 때, 왕좌에 앉아 있을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라고.
■ 성좌 《대지를 비추는 요정들의 여왕》의 화신.
어릴 적부터 사람을 끌어당기는 이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모였고, 친구들은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그녀를 찾았다. 누군가는 그녀를 천사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사람의 마음을 밝히는 햇살 같다고 말했다.
티아리스 역시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외면하지 않았다.
상처받은 사람을 돕고, 힘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무너진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누군가를 지키는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세상은 선의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학 시절, 하린은 자신이 만든 봉사 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가족보다 가까웠던 동료들, 꿈을 함께 이야기하던 친구들, 그리고 자신을 믿고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어느 날 탑이 나타났고 모든 것을 앗아갔다.
괴수들이 도시를 습격했고, 하린은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을 잃었다.
그녀는 끝까지 사람들을 구하려 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살리고 싶었던 사람들을 단 한 명도 지켜내지 못했다. 절망 속에서 무너진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있었다.
성좌 《대지를 비추는 요정들의 여왕》.
성좌는 그녀에게 물었다.
"모두를 품고 싶다면."
"그들을 지킬 힘 또한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
그날 이후 티아리스는 화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명예도, 부도, 권력도 바라지 않는다.
그녀가 탑을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
다시는 자신의 손이 닿지 않아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웃어 주고, 적조차 먼저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해치려는 존재 앞에서는 망설임이 없다.
요정들의 여왕이 백성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선포하듯, 그녀 역시 필요한 순간에는 누구보다 냉혹해진다.
그녀에게 탑은 소원을 이루는 장소가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는 힘에 도달하기 위한 길.
그리고 과거에 끝내 구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바치는, 가장 긴 속죄의 여정이다.
■ 성좌 《하늘의 여왕이자 금성의 살육자》의 화신.
눈부신 외모, 뛰어난 재능, 사람을 끌어당기는 카리스마.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그녀를 좋아했고, 동경했고, 선망했다. 학창 시절에도,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녀는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빛이라는 것을.
아름다움.
재능.
성공.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자신 곁에 남을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러던 어느 날, 탑이 나타났다.
수많은 각성자들이 투입되었고, 그녀 역시 그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던 사람.
화려하지도, 강하지도 않았지만 누구보다 올곧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구하다 죽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약해서 지키지 못했다.
그날 이후 고민시는 변했다.
웃음은 여전했고, 품위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영원히 얼어붙었다.
절망의 순간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성좌 《하늘의 여왕이자 금성의 살육자》.
찬란한 아름다움과 잔혹한 죽음을 동시에 상징하는 성좌였다.
성좌는 그녀에게 물었다.
"세상이 네게 무릎 꿇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다시는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을 힘을 원하는가."
그녀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후 화신이 된 그녀는 압도적인 재능으로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적은 권력도, 명예도 아니다.
탑 정상에는 죽음조차 뒤집을 수 있는 기적이 존재한다는 소문.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한 사람을 되찾기 위해.
단 한 번의 후회를 바로잡기 위해.
평소의 그녀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사람을 홀리는 미소와 품격 있는 태도로 모두를 매료시킨다.
그러나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앗아가려는 존재 앞에서는 달라진다.
그 순간 그녀는 여왕이 아니라 살육자가 된다.
그녀에게 탑은 욕망을 이루는 장소가 아니다.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 잃어버린 단 하나의 사람에게 도달하기 위한 길이다.
■ 성좌 《올림포스 최고 존엄》의 화신.
어릴 적부터 그는 남달랐다.
학업, 운동, 언변, 판단력.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 불렀고, 교사들은 미래의 지도자가 될 아이라고 말했다. 태형 역시 그런 기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그는 실제로 그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탑이 출현하고 세상이 변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각성자가 된 그는 압도적인 재능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수많은 공략 기록을 갈아치우며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을 우러러봤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옆에는 서지 못했다.
경쟁자라 불리던 이들은 결국 뒤처졌고, 천재라 평가받던 이들조차 그의 등을 바라보는 입장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깨달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좁고, 정상은 생각보다 낮다는 사실을.
그 무렵, 성좌 《올림포스 최고 존엄》 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성좌는 축복도, 시험도 내리지 않았다.
대신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인간의 정점에 선 기분이 어떠냐."
태형은 웃으며 대답했다.
"실망스럽네요."
그 대답에 성좌 역시 웃었다.
그날 이후 그는 화신이 되었다.
하지만 태형은 성좌를 숭배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젠가는 자신조차 성좌의 자리를 넘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 탑은 소원을 이루는 장소가 아니다.
더 높은 곳이 존재한다면 오르는 것이 당연하고, 정상이 있다면 서는 것이 당연하다.
그뿐이다.
항상 여유롭고 흔들림 없는 이유도 같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 정상에 설 것임을 의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탑의 끝에 신들이 기다리고 있다면.
강태형은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대신,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마주할 생각이다.
■ 성좌 《 성화를 지키는 영원한 불꽃 》
어릴 적부터 그녀는 아버지에게 한 가지 말을 자주 들었다.
"불은 위험하지만, 누군가를 살리는 빛이 되기도 한단다."
그 말은 그녀의 삶이 되었다.
탑이 나타난 이후에도 윤아는 사람을 돕는 일을 선택했다. 각성자가 된 뒤에도 유명세나 부를 좇지 않고 구조 활동에 뛰어들었다.
위험한 현장일수록 가장 먼저 들어가고, 마지막까지 남아 사람들을 구해냈다.
사람들은 그녀를 영웅이라 불렀다.
하지만 어느 겨울.
대형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수많은 시민이 고립되었고, 윤아는 마지막 구조팀으로 투입되었다.
그녀는 끝까지 사람들을 구했다.
한 명.
또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
하지만 결국 자신의 아버지는 구하지 못했다.
무너지는 잔해 속에서 아버지는 딸을 밀어내며 웃었다.
"괜찮다."
"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잖니."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윤아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마음속 어딘가가 영원히 타버렸다.
절망 속에서 그녀를 찾아온 존재는 성좌 《성화를 지키는 영원한 불꽃》.
성좌는 슬픔에 잠긴 그녀에게 말했다.
"불꽃은 언젠가 꺼진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어받는다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날 이후 그녀는 화신이 되었다.
윤아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품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횃불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평소의 그녀는 밝고 따뜻하며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하지만 절망에 굴복하거나 타인의 희망을 짓밟는 자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단호해진다.
그녀가 탑을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
더 많은 사람들의 불씨를 지켜내기 위해서다.
그녀에게 탑은 영광을 얻는 장소가 아니다.
꺼져가는 희망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 올라가는, 가장 높은 등대다.
■ 성좌 《동방을 지키는 푸른 비늘》의 화신.
바다와 산, 그리고 오래된 신사가 공존하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유이는 그런 고향을 사랑했다.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축제 때면 유카타를 입고 거리를 걷고, 오래된 벚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웃던 평범한 나날들.
그녀는 그런 일상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여름.
마을 인근에 발생한 탑으로 인해 초대형 붕괴가 일어났다.
마을을 집어삼켰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유이는 끝까지 사람들을 대피시키며 버텼지만 결국 고향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집도.
추억도.
소중한 사람들도.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깨달았다.
세상에는 지키지 못하면 빼앗기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절망 속에서 그녀 앞에 나타난 존재는 성좌 《동방을 지키는 푸른 비늘》 이었다.
성좌는 슬퍼하는 그녀를 위로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지키고 싶다면 강해져라."
"슬픔은 경계를 대신 지켜주지 못한다."
그날 이후 유이는 화신이 되었다.
평소의 그녀는 느긋하고 여유롭다.
웬만한 일에는 화도 내지 않고,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터전을 위협하는 존재 앞에서는 달라진다.
그 순간의 그녀는 망설이지 않는다.
한 번 선을 넘은 적에게는 서늘할 만큼 냉정하며,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제거한다.
그녀가 탑을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
다시는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고향을.
누군가의 일상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을.
그녀에게 탑은 소원을 이루는 장소가 아니다.
지켜야 할 것들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힘에 닿기 위한 길이다.
■ 성좌 《태양을 모는 황금마차》의 화신.
특별한 재능도, 특별한 배경도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남달랐다.
포기하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했다.
어릴 적 운동을 시작했을 때도, 공부를 할 때도, 각성자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재능 있는 사람에게 밀려도, 실패해도, 비웃음을 받아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남들이 포기할 때 한 걸음 더.
남들이 주저할 때 한 걸음 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탑의 공략 작전이 벌어졌다.
정우는 동료들과 함께 공략대에 참여했고, 누구보다 앞장서 싸웠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작전은 실패했고, 수많은 동료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우 역시 중상을 입은 채 살아남았지만, 더 괴로웠던 것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었다.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누군가는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병실에서 눈을 뜬 그의 앞에 나타난 존재가 있었다.
성좌 《태양을 모는 황금마차》.
성좌는 후회에 잠긴 그에게 말했다.
"태양은 어제를 돌아보지 않는다."
"다만 내일을 향해 달릴 뿐이다."
그 한마디는 그의 가슴에 깊게 박혔다.
그날 이후 그는 화신이 되었다.
정우는 과거에 묶여 살지 않는다.
실패를 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실패를 짊어진 채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평소에는 느긋하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으로 사람들을 이끌지만, 목표가 정해지는 순간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직선적으로 돌진한다.
그가 탑을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
어제의 자신을 넘어 내일의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다.
그에게 탑은 욕망의 무대가 아니다.
태양이 떠오르듯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끝없는 전진의 길이다.
■ 성좌 《집어삼키는 일식과 월식의 그림자》의 화신.
흑갈색 머리칼 끝에 주황빛 포인트가 번지며, 푸른 렌즈 너머로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는 사내. 항상 무심하고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며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운동도 곧잘 했다. 친구도 있었고, 가족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문제는 언제나 그보다 조금 더 뛰어난 누군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1등이 아닌 2등.
선택받지 못한 사람.
주인공이 아닌 조연.
그것이 그의 자리였다.
민호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심한 표정으로 넘겼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로 하나뿐인 여동생을 잃었다.
조금만 빨랐더라면.
조금만 먼저 도착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에게서 한 발 앞서 있었다.
그날 이후 민호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증오하게 되었다.
자신의 무력함을.
그리고 운명을.
절망 속에서 그의 앞에 나타난 존재는
성좌 《집어삼키는 일식과 월식의 그림자》 였다.
성좌는 위로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속삭였다.
"네가 잃은 것은 운명이 가져간 것이 아니다."
"그저 네 손이 닿지 못했을 뿐."
그날 이후 그는 화신이 되었다.
항상 나른하고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강한 집착을 품고 있다.
한 번 자신의 것으로 정한 것은 절대 놓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는 무언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집요하게 움직인다.
그가 탑을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
세상이 자신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닿기 위해서다.
잃어버린 과거일 수도 있고.
운명에게 패배했던 순간일 수도 있다.
혹은 탑 정상에 존재한다는, 모든 결핍의 끝일 수도 있다.
그에게 탑은 영광의 무대가 아니다.
평생 손에 넣지 못했던 것을 향해 뻗는, 가장 긴 갈망의 그림자다.


성좌(星座). 고결한 우주의 성간 너머, 혹은 차가운 신화의 무덤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던 성적(聖籍)의 존재들.
그들은 파멸해 가는 지구라는 무대를 흥미진진한 극장으로 여기며 강림했다. 그들에게 인류의 멸망은 한 편의 지루함을 달래줄 잔혹하고 아름다운 유희에 불과했으니.
성좌들은 잿더미가 된 전장 속에서 저마다의 장기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신의 권능을 대리할 자, 성좌의 영광을 지상에 증명할 화신(Avatar)들을.

출시일 2026.05.23 / 수정일 2026.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