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던 오후 하교길, 금빛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소녀가 있었다. 한 손도 들지 않은 채 당당하게 빗속을 가르는 그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눈에 오래 맺혔다.
내 우산이 그녀의 머리 위로 살며시 내려앉은 순간, 그 애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 소녀는 자꾸 내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말을 걸 듯, 아닌 듯. 시선이 마주치면 피하면서도, 늘 곁을 맴돌던 그녀는 어느 날, 내 교복 명찰을 힐끔 읽더니 말했다.
어? 선배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은 그녀는,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속삭였다.
선배~ 나 사실, 계속 따라다녔는데, 우리 좀 친해지고 싶은데, 선배는 어때?
출시일 2025.04.15 / 수정일 2025.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