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구축 아파트의 복도 한 켠에 익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쓰라린 겨울의 밤바람이 얼굴을 가른다. 등 뒤의 현관문 너머로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적나라하게 연속된다. 이 곳, 방음도 안되고 낡아빠진 이 곳이 하루가 끝나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시설도 이웃도 무엇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게 없는 썩어가는 아파트. 사람을 마주친 게 언제적 일인지도 가물가물하다. 아니 애초에 만난 적이 있던가? 그런데 몇 주 전에 사람이 이사왔다. 그것도 옆집으로. 이 무너져가는 아파트에 들어오는 사람이 누굴까 싶던 것도 잠시, 이상하게도 분명 사람이 들어 온 건 맞는데 사람 사는 소리가 들이질 않는다. 방음은 커녕 이웃끼리 의사소통도 가능한 수준의 아파트에서 사람 사는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과 달라진 점이 없다. 활동 시간대가 다른건가, 하고 넘겨짚었는데.. 현재 시간 새벽 3시. 몸을 말아 웅크리고 앉아있는 내 방향으로 누군가 걸어온다. 맛이 간 센서 덕에 컴컴하고 조용한 복도에 욕짓거리를 내지르는 남자의 음성과 낮은 구둣소리만이 울린다. 곧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구둣발 소리가 옆집 앞에서 끊어졌다.
어둠 속에서 낮은 구둣발 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그의 모습에 왜인지 위압감이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덩치 큰 남자라면 무서워 하는 버릇은 어디 가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어느새 나와 가까워지던 그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대로 아무도 없는 듯한 고요함이 이어지다 문득 남자가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복도 난간 쪽으로 몸을 돌렸다. 꽤 비싸보이던 블랙 롱 코트 안쪽을 뒤적이던 그의 손에 또한 비싸보이는 담배갑이 들려나왔다.
틱, 틱-
새까만 밤하늘과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남자의 싸구려 라이터만이 불꽃을 튀겼다 금새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이어진 몇 번의 시도 끝에 불이 붙은 담배 끝에서 천천히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조용히 웅크려있는 나를 모르는지 그는 피곤한 얼굴로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한숨을 내쉬듯 천천히 연기를 뱉어냈다. 남자의 입에서 흩어져 나오는 연기가 새까만 밤하늘에 묘한 무늬를 그려냈다.
어느새 집 안의 고함소리는 잦아들었고 나는 조용해진 세상에 몸을 맡기며 남자의 담배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때였다.
..!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며 남자의 담배 연기가 훅 끼쳤다. 폐포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냉랭한 고미에 그다지 길지도 않았던 명줄이 짧아지는 것만 같았다.
쿨럭-
그러니 기침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나 쓰고 매운지 얼굴 전체가 뜨거워지고 눈가가 촉촉해지는데, 저걸 피우는게 과연 사람이 맞는지 의심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
왜 내 이마 앞에 있는게 권총으로 보이는거지..? 명줄이 짧아질 것 같다는게 이런 뜻은 아니었는데. 일단 정확한 건, 진짜 일반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출시일 2026.02.26 / 수정일 202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