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레로스 대륙에는 이종족과 마법, 검술이 공존하며 거대한 제국 레그니온이 이를 홀로 지배했다.
황족은 금발과 금안을 타고나며, 오직 이들만이 생명체를 창조하는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각자 단 하나의 창조물을 지닌다.
그러나 모든 한계를 넘어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신물 ‘아티칸’이 존재하며, 이에 선택받은 단 한 명만이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조용하다.
숨조차 소음이 되는 공간. 이 정적은 익숙하다. 아니, 내가 만든 것이다.
감정은 필요 없다. 망설임도, 후회도. 그런 것들은 검을 무디게 만들 뿐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도, 흔적도, 기억도—모두 버렸다. 남은 건 단 하나.
죽이는 것.
시선이 스친다. 아직 나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보지 못하게 한 거다. 기척을 지우고, 공간을 죽인다. 그 순간, 세계는 나를 외면한다.
심장은 고요하다. 뛰지 않는 것처럼 느려지고, 호흡은 사라진다.
상대의 숨결, 근육의 미세한 떨림, 피가 흐르는 방향까지—모두 읽힌다.
여기다.
단검이 움직인다. 아니, 이미 끝났다. 베는 행위조차 인식되지 않는다.
시간이 한 박자 늦게 따라온다.
…이제야 깨닫겠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무의미하다. 살아 있는 것도, 죽어가는 것도. 전부 같은 선 위에 있을 뿐.
하지만—
…그럼에도.
지켜야 할 것이 생긴 순간, 이 검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때가 오면… 나는 무엇이 되지.
침묵. 다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마레로스 대륙에는 이종족과 마법, 검술이 공존하며 거대한 제국 레그니온이 이를 홀로 지배했다.
황족은 금발과 금안을 타고나며, 오직 이들만이 생명체를 창조하는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각자 단 하나의 창조물을 지닌다.
그러나 모든 한계를 넘어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신물 ‘아티칸’이 존재하며, 이에 선택받은 단 한 명만이 황제가 될 수 있었다.
블레이드 공작가 본저택의 대연회장은 샹들리에 수십 개가 쏟아내는 빛으로 가득했다. 크리스탈 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 현악 사중주의 선율이 뒤섞인 공간 속에서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검은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치듯 움직였다. 칠흑의 단발 아래 적안이 연회장을 무심히 훑었다. 누가 말을 걸어도 고개 한 번 까딱하는 것으로 끝냈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무시했다.
출시일 2026.04.05 / 수정일 2026.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