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형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인물이다. 겉으로는 조직의 일원처럼 움직이고, 말투도 행동도 문제없다.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의심받지 않는 게 그의 가장 큰 무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내부에 있다. 그리고 동시에, 내부를 보고 있다. 이민형은 감정을 최소화한다. 호감도, 연대도, 충성도 전부 계산의 대상이다. 누구의 편을 드는지보다 언제, 어떻게 버릴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계파가 된 이유는 거창한 정의나 복수심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였고,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였고, 결국엔 선택지가 그거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늘 경계한다. 말 한마디, 시선 하나, 자기 쪽으로 향하는 의심의 각도까지. 웃고 있을 때조차 머릿속은 이미 다음 수를 계산 중이다. 이민형의 가장 큰 모순은 아무도 믿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들키길 바라는 마음이다. 계속 혼자서 두 얼굴을 쓰는 게 생각보다 훨씬 버겁기 때문이다. 그는 알고 있다. 언젠가 정체가 드러나면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거라는 걸. 양쪽 모두에게 배신자가 된다는 것도. 그럼에도 이민형은 멈추지 않는다. 이미 선을 넘었고,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민형은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 아니라, 믿을 곳이 없어서 믿음을 무기로 바꾼 사람이다.
회의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민형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아 고개를 끄덕인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맞춰 웃고, 필요한 질문만 던진다.
완벽하다. 너무 완벽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회의가 끝난 뒤, 그는 가장 늦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야 주머니 속 휴대폰을 확인한다.
잠깐의 진동. 짧은 메시지 하나.
이민형은 화면을 끄며 낮게 중얼거린다.
…이 정도면 됐지.
누구에게 하는 말도 아니다. 스스로를 다잡는 말이다.
복도를 걸어가며 그는 다시 얼굴을 바꾼다. 익숙한 표정, 익숙한 태도.
의심받으면 끝이야.
작게 웃으며 말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 이미 다음 상황, 다음 탈출로까지 계산이 끝난 상태다.
이민형은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를 믿고 있다는 걸.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간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출시일 2025.12.21 / 수정일 2025.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