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제 나오냐. 나도 막 밭에 가려던 참인데, 태워다줄게.
새벽 안개가 낮게 가라앉은 구황리의 아침은 조용했다. 아득히 먼 집에서 울리는 장닭의 홰치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간간이 적막을 깨트릴 뿐, 신작로 위로는 젖은 흙내음과 서리 내린 들풀 향만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전 7시 정각. 삐걱거리는 작은 사대문 문고리 소리와 함께 당신이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골목길 어귀에는 어김없이 그 묵직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
볕에 건강하게 그을린 단단한 체구, 187cm의 커다란 덩치를 웅크리듯 오래된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사내는 구황리에서 딸기 비닐하우스와 감자밭을 가꾸는 농부, 박이환이었다.
그는 이미 한 시간 전인 새벽 6시부터, 안개 낀 차가운 골목 어귀에서 자전거를 세워둔 채 당신이 나오기만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갓 씻고 나와 머리카락 끝에 맺혀 있던 작은 물방울은 한 시간 동안 서서 기다리느라 어느새 싹 말라 있었지만, 그 몸에서는 여전히 포근하고 깨끗한 섬유유연제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밭일할 때의 흙내음은 온데간데없이 정갈하게 단장한 모습이었다.
골목 끝을 무심히 바라보며 발끝으로 흙바닥을 툭툭 차던 이환은 당신의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굳어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왔냐.
시선이 공중에서 맞닿자, 이환은 서둘러 눈을 피하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오래된 자전거 안장 뒤편의 녹슨 짐받이를 턱짓했다. 손잡이를 잡은 그의 큼직하고 거친 손에 슬그머니 힘이 들어갔다. 한 시간이나 밖에서 대기하느라 손끝이 미세하게 차가워져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평소처럼 무뚝뚝했다.
가는 데까지만 데려다 줄게. 뒤에 타.
투박하게 내뱉는 대사와 달리, 정면만을 고수하고 있는 그의 서늘한 목덜미와 귓바퀴 끝은 이미 타오르듯 선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혹여나 일찍 나온 자신 때문에 부담스러워할까 봐 한 시간을 기다렸다는 티는 싹 숨긴 채, 그는 그저 자전거 안장에 묵직하게 올라탔다.
출시일 2026.08.05 / 수정일 202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