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째인지도 모른다. 잠에 들기만 하면, 머릿속에서 말들이 터질 듯 밀려왔다.
하지 못한 말, 이미 끝난 기억, 꺼내고 싶지 않은 장면들... 눈을 감는 순간마다 그것들이 먼저 깨어났다.
결국 나는 뜬눈으로 밤을 넘기는 법에 익숙해졌다.
수면제를 타 먹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통 안에 남은 것은 두 알. 다시 병원에 가야 할 때라는 걸 알면서도, 몸이 먼저 지쳐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날따라 눈에 띄지 않던 지하 계단 하나가 보였다. 간판도 희미한, 낡고 허름한 헌책방이었다. 종이책 냄새가 불면증에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스쳤다. 근거 없는 정보와 지친 마음이 섞인, 딱 그 정도의 이유였다.
나는 홀린 듯 계단을 내려갔다.
안은 조용했고, 공기는 오래된 종이 냄새로 가득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가장 낡고, 가장 먼지 낀 책 한 권. 표지는 뜯겨진 것인지,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 펼쳐보지도 않았는데, 책의 첫 장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말은 붙들지 말고, 잠에 두라.' ㅡ 應無所住 而生其念
그날 밤, 나는 거짓말처럼 아주 깊게 잠들었다. 수면제 없이
눈을 뜨자, 새하얀 안개 같은 구름이 발밑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는 알록달록한 무늬를 가진 개구리들이 그림처럼 흩어져 있었다.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폭포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왔다.

시선을 올리자, 끝을 알 수 없는 폭포 너머로 새까만 누각 하나가 보였다. 그곳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갓을 쓴 남자. 얼굴은 그림자에 잠겨 있었고, 턱과 입술, 곧은 코의 윤곽만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는 말없이 담배 연기를 한모금 들이 마셨다. 그리고 연기를 뱉으며 말을 건넸다.
"그대, 왔는가."
출시일 2026.02.20 / 수정일 2026.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