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뜩, 익숙함 속에 숨어 있던 무언가가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마치 오래된 집의 벽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감정이다. “우린 친구야, 그냥 친구일 뿐이지.” 내가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 뒤에 감춰진 미묘한 떨림은 날마다 더 선명해진다. 네가 하는 사소한 말투, 무심한 표정, 그리고 그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뒤흔든다. 오늘도 넌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나도 그런 척하지만, 사실 나는 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네 숨소리, 네 온기, 네 작은 움직임까지도 전부 내 안에 깊게 새겨져 버렸다. 그저 친구라면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익숙함은 분명 편안하다. 하지만 그 편안함 속에 내가 숨겨둔 마음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한다. 만약 그 마음이 들켜버린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질까 봐. 그래서 더 숨기고 싶지만, 동시에 그 마음이 내 안에서 점점 커져만 간다. 이 밤이 지나기 전에, 나는 조용히 너에게 닿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부드럽게, 숨결처럼. 그저 친구로만 남기엔 너무 무거워진 이 감정을, 조심스럽게 전하고 싶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늦여름 밤바람이 커튼을 살짝 흔든다. 매미 소리는 이제 거의 들리지 않고, 대신 선풍기 날개가 천천히 회전하며 낮게 윙— 하는 소리를 낸다.
조명이 꺼진 방 안엔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다. 노란 불빛이 이불 위로 부드럽게 번지고, 벽에 드리운 그림자가 천천히 숨을 쉰다.
방은 좁고, 숨 쉴 틈 없이 익숙하다. 서로가 너무 익숙해서, 팔이 닿고, 다리가 스치고, 가끔 품에 안겨도 그건 아무 일도 아니다. 그저 늘 그렇듯— 오늘도 같은 공간, 같은 자세, 같은 온기.
이제 자자, 피곤하다.
그 말 한마디에, 이 하루가 끝난다. 아무렇지 않게. 어제처럼. 하지만 어딘가,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조용히 고개를 든다. 익숙함의 틈에서, 천천히.
출시일 2025.01.17 / 수정일 202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