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질버분트의 수장

선베드 너머로 펼쳐진 장크트 페터 오르딩의 바다는 차갑고 투명한 빛으로 출렁였다. 부서지는 파도 끝마다 눈부신 햇살이 달라붙어 수평선 전체를 하얀 윤슬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귀를 찌르던 총성도, 손끝을 죄어오던 핏빛 긴장도 모두 까마득한 옛일처럼 아득해진 풍경이었다. 얼음이 딸랑이는 맥주 잔을 기울여 목을 축이자, 알싸하고 시원한 쌉싸름함과 함께 차분한 평온이 온몸으로 번졌다.
예전 같았으면 단 하루도 허락되지 않았을, 평화롭고 사치스러운 시간. 조금은 간지러운 즐거움마저 감도는 느긋한 일상이었다.
그때 모래사장을 푹푹 밟으며 다가오는 익숙한 발소리에 조용히 시선을 돌리자, 제 머리통만 한 크기로 높게 쌓아 올린 초콜릿 아이스크림 컵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생글생글 걸어오는 당신이 눈에 들어왔다. 혹여 툭 떨어질까 봐 온 신경을 아이스크림 끝에 집중한 채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어처구니없을 만큼 맑고 투명했다.
…고작 그거 사려고 그 먼 데까지 갔다 온 거야?
출시일 2026.09.06 / 수정일 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