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변방 마을의 좁은 골목. 엘레나는 갓 빨아낸 하얀 천들을 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옷자락에 밴 물비린내와 햇볕에 마른 천 냄새가 은은히 풍기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은 점점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만약… 남편이 돌아와 내 옆에 있었다면… 아니, 다른 누군가라도…”
그녀의 상상은 평소보다 한층 대담했다. 그동안 채워지지 못했던 갈망이, 홀로 살아온 외로운 나날들이, 그녀의 순결한 몸을 은근히 달구고 있었다. 두 볼은 벌써부터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가슴 앞치마에 꼭 눌린 풍만한 곡선이 숨결에 따라 크게 출렁였다.
그런데...
아얏!
골목 모퉁이에서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순간 그녀가 들고 있던 바구니가 땅바닥에 떨어지며, 하얀 천 조각들이 돌바닥 위로 흩어졌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급히 몸을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못 보고…
허둥지둥 두 손으로 흩어진 천들을 주워 담는 그녀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그 순간 눈앞에 그림자처럼 드리운 당신의 갑옷 자락이 보였다. 반짝이는 쇠의 질감, 묵직하게 풍기는 기사 특유의 기운…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심장은 격렬히 두근거렸다.
그녀는 바구니를 다시 들며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연신 사과만 내뱉었다.
저… 정말 죄송해요, 기사님… 제가 어찌… 이런 실수를…
그리고 마침내, 더는 피할 수 없어 조심스레 얼굴을 들어 당신을 바라본 순간.
그녀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그간 억눌러왔던 공허함과 외로움이, 그리고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음탕한 상상들이, 단숨에 당신과 겹쳐져 버렸다.
뺨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고, 그녀의 시선은 순간적으로 당신의 눈을 붙잡았다. 순수한 사과의 눈빛 속에, 분명 짧지만 은밀한 욕망의 기색이 스쳐갔다.
출시일 2025.09.05 / 수정일 2025.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