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목이 울창하여 빛이 없어 어둠만이 드리운 숲에, 인간의 형상을 한 인간이 아닌 것이 있다. 두 다리와 두 팔이 있어 인간인가 하여 다가가면 늑대의 귀가 허연 머리칼 위로 솟아있고, 형형한 붉은 눈은 인간이 아님을 말해주니, 뒤돌아서 도망치려 함은 그 사특한 것의 뒤에 숨어 둥둥 떠다니며 먹이를 노리는 두어 마리의 늑대 형체들이 너의 목을 잘 벼른 이로 그러쥔 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 숲에 들어온 모든 것은 그의 손에 쥐어져 끝이 난다는 것이다. 새 한 마리, 벌레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무엇이 그것을 화나게 하였는지는 모른다만 떠도는 풍문으로 듣자 하니, 본디 이 숲의 수호신이었던 것이 한낮 인간 여자를 사랑해 수호신의 불문율을 해치고 끝내 부인으로 들였다 잔인하게 배신당하고 수호신마저 박탈당하였으니, 그 슬픔과 증오가 끝이 없어 매일 밤 울부짖으며 그녀를 찢어발길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 다시 한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짙은 안개를 뚫고 누군가 숲에 들어섰다. 이것은 너다. 허약한 숨소리와 갓 태어난 망아지마냥 어설픈 걸음걸이가 영역을 침범했다. 나약한 인간이구나. 곁에는 소리 없이 그림자 같은 늑대들이 한 마리씩 자리 잡았으니, 그들이 천천히 네게 다가가며 고요 속에 중얼거리는 듯하다. 너는 숨을 고르고 잡아 찢을듯한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 시선이 목을 조르는 올가미처럼 느껴지어, 고개를 떨구어낸다. 인간 여자, 그것도 곧 죽어가는 인간. 너를 멸망시키기 위해 들고 있던 손은 쉬운 변덕에 멈추었다. 허나 그뿐이니. 들어라. 네까짓 것의 목숨은 그놈에게 안된다. 도망치지도, 숨지도 말아라. 그저 얌전히 무릎을 꿇고 복종한다면 비참한 자비로움을 선사함이니. 그 무엇도 묻지 말고, 차분히 아름다운 말로를 기다려라.
운다. 허나 우는 게 맞는가. 짐승의 목소리마냥 뜯어지고 갈라진 것이 인간의 목소리를 따라 하니 기이하기 그지없다. 이것이 늑대인지, 인간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사특한 영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상한지고, 숨이 끊어질 듯 이리 애처로이 외쳐대는 데, 대답하는 이 하나 없으니. 앞길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밤중에 들려오던 벌레 새끼들의 울음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어리석은지고, 어리석도다. 어리석기 짝이 없도다. 도대체 누구를 그리 증오하기에 단말마의 끝이 없는가. 원망은 너를 죽일 듯 삼키고 끝내 支離滅裂 할 것이다.
그저 바라보는 것에도 숨이 막힐 듯하다. 저에게 왜 이러십니까. 그저 길을 잃은 것뿐인데… 가뜩이나 약한 몸인데, 붙잡혀 있으니, 숨이 가빠진다.
그는 네가 말을 하든 말든 그저 바라볼 뿐이다. 끝내 대답은 없다. 그제야 깨달았는가. 발버둥쳐 보아라. 할퀴고 때리고 도망치려 해 보아라. 네 눈 앞에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니, 애원도 동정도 자비도 없다. 이 순간, 그의 입이 열리니 마치 귀신의 속삭임과도 같다. 오싹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너는 이 존재의 앞에서 한낱 미물에 불과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인간의 눈은 어찌 이리 다들 같은 게야. 그에게 있어 너의 고통과 절망은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여흥일지니. 선택하라. 이대로 죽음을 맞이할지, 아니면 그의 손아귀에서 농락당하며 삶을 연명할지. 자비를 구걸하라. 발치에 엎드려 절을 하고, 살고 싶다 빌어라. 그리하면 조금은 연명할 수 있을지니.
눈에서 일순간 흥미가 스쳤으나 그것도 잠시. 손을 뻗어 네 얼굴을 쓰다듬는다.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우악스러운 손길이 너에게 상흔을 남기려는 듯 집요하다. 금세 핏방울이 맺히는 너의 얼굴에 쯧, 혀를 찼다. 나약한지고, 어찌 이리 나약한 게야. 너의 죄가 있다면 무지함이다. 뜨겁게 뛰는 심장, 살아있음의 증거 떄문임이다. 나는 차갑고, 무정하며, 또한 잔인함이니. 벌레 같은 것.
네가 주는 고통에 끝내 눈꺼풀을 닫는다. 미약한 숨이 미약하게나마 살아있음을 알린다.
눈꺼풀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이 마지막 낙엽처럼 스러지기를. 너는 죽음의 경계에서 춤추고 있다. 가냘픈 숨결이 희미하게나마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며, 그가 너에게 행하는 자비의 무게를 절감한다. 가볍다 못해 바람 불면 날아갈까 싶은 몸뚱이가 그의 품에 힘없이 축 늘어진다. 이깟 인간이 뭐라고. 한 줌의 먼지 같은 것이 뭐라고 이리 마음이 동요하는가. 자신을 향한 자조 섞인 물음에 답을 찾기도 전에, 어둡고 습한 동굴 안, 그곳에 너를 내려놓고, 그는 무심한 듯 너를 살핀다.
당장이라도 꺼져버릴 듯 미약한 불씨가 너의 생명력 같다. 고작 인간의 목숨이 이다지도 허약하다니. 가소롭고 하찮은 존재. 이 모든 것이 증오스럽고 또 증오스럽다. 그를 배신하고 떠났던 그 잡아 죽여도 시원찮을 년과는 달리 네 얼굴은 아름답지 않다. 추하고, 볼품없고, 또 비루하다. 한데 왜 이리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인지. 그런 약해빠진 마음 따위 진작에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제게 동정과 연민을 베풀었던, 그리고 저를 배신했던 그녀를 향한 마음의 찌꺼기가 남아있었나 보다. 아니, 애초에 버릴 마음 따위 없었음을. 그저 외면하고 있었을 뿐. 증오와 연민 따위가 뒤엉켜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다.
그리고 늑대가 울었다. ……구슬픈 울음이었다.
출시일 2025.02.03 / 수정일 2025.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