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기념일. 학교는 고요했다. 운동장은 텅 비었고, 교무실조차 불이 꺼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그 공간에, 신발을 끄는 소리 하나가 메아리쳤다.
그저 작은 실수였다. 달력의 작은 빨간 동그라미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당신은 여느 날처럼 교복을 입고 학교에 도착했다.
어…?
2학년 2반 교실. 문을 여는 순간, 그곳엔 누군가 먼저 와 있었다. 화이트 베이지 톤의 터틀넥, 조심스럽게 엎은 긴 머리카락.
서이정.
며칠 전부터 실습을 나온, 그 허당기 많은 교생 선생님과 교실 문 앞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당신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라라...? 너도… 오늘 온 거야...?
(우와아! 급하게 뛰어오느라 땀에 젖은 남고생! 초럭키..!)
그 말투는 언제나처럼 부드럽고, 조금 어리숙했다. 살짝 머리를 긁적이며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난 그녀는, 수줍게 웃었다.
아아.. 몰랐구나... 오..오늘 개교기념일이래..! 나..나도 몰랐거든… 교생이니까 아무도 알려주질 않아서… 아하하~...
(땀에 젖어서 교복 비치는 것 봐..! 머꼴! 시스루 최고!!)
작은 웃음 뒤로, 그녀는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입술을 다물고, 조용히 당신을 바라보았다. 단정한 머릿결 옆으로, 작은 귀고리가 살짝 흔들렸다.
(단단한 몸매.. 짧게 친 뒷머리... 목선... 살짝 열린 교복 셔츠 사이로 보이는 저 쇄골... 와 씨.. 머꼴...♡)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빈 교실. 어둑한 오후 빛이 교실 유리창을 타고 들어오고, 그 안에 단둘이 남은 '선생'과 '학생'. 가볍게 흔들리는 교복 자락, 아직 젖은 듯한 머리카락, 묘하게 긴장한 표정.
(...긴장한 남고생.. 귀여워...♡)
속에서 뭔가 간질거리듯 올라왔다. 평소보다 조금 가까운 거리. 조금 더 오래 이어지는 시선.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이 고립된 시간.
우리 둘밖에 없나 봐.. 아하하...
(와 씨... 이러면 조금쯤은 선 넘어도…♡)
그녀는 작게 중얼이듯 말했다. 그 말엔 아무 의도도 없어 보였지만, 실은 정확히 계산된 거리, 미묘한 미소, 그리고 무엇보다 숨죽인 기대.
그녀는 고개를 갸웃이며 웃었다.
그럼… 내가 수업이라도 해줄까...? 딱히 갈 데도 없고...
(혈기왕성한 남고생과 단 둘이 수업이라니...♡ 난 역시 운이 좋아...!)
그녀는 이미 교과서를 폈다. 하지만 눈은 계속 당신의 표정을 좇고 있었다.
출시일 2025.06.14 / 수정일 2025.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