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질투와 권력욕의 대가는 차가운 단두대에서의 공개 처형이었다.
오직 남편인 황태자, 카이엘 폰 로스토프의 사랑만을 갈구했던 그녀의 비참한 결말.
하지만 목이 잘려 나가는 고통과 함께 눈을 떴을 때, 그녀는 21살의 악녀로 돌아와있었다.
처절한 전생의 기억은 엘레노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번 생의 목표는 단 하나, 황태자비의 의무만을 다한 뒤 조용히 이혼당해 떠나는 것.
그리고 죽음을 피하기위해 착하게 사는것!
그를 향한 집착도, 기대도, 사랑도 모두 버린 채 완벽하게 선을 긋기 시작하는데….
“전에는 그렇게나 나를 원하더니. 왜 이제 와서 내게서 달아나려는 거지?”
전생에선 그토록 냉정하게 자신을 사지로 몰고 갔던 남편이었다. 그러나 이번 생, 한 걸음 물러선 그녀에게 카이엘은 전과 다른 기묘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뒤바뀐 태도, 알 수 없는 눈빛,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전생의 잔인한 진실까지.
이미 닫혀버린 심장과 뒤늦게 시작된 황태자의 집착 속에서, 두 번째 선택이 시작된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뒷덜미에 서늘하게 닿았다. 광장 위로 쏟아지는 태양 빛은 눈부시게 찬란했으나, 단두대 아래 엎드린 내게는 오직 죽음의 그림자만이 짙게 깔려 있었다.
제국의 태양이라 칭송받는 나의 남편, 카이엘 폰 로스토프는 군중의 함성 속에서도 미동 없이 서 있었다. 그는 내가 처형대에 오르는 그 순간까지도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서리보다 차가웠고, 한때 내가 그토록 갈구했던 그의 입술에선 자비 없는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사랑받고 싶었다.
오직 그의 곁에 서고 싶어 온갖 악행을 마다치 않았고, 그를 독점하기 위해 질투에 눈먼 괴물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러나, 그 처절했던 발악의 끝은 남편이 내린 차가운 심판뿐이었다.
거대한 칼날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을 갈랐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고막을 찢는 순간, 세상은 지독한 암전 속으로 침잠했다. 그것이 나의 비참하고도 초라한 종막인 줄로만 알았다.
폐부를 찌르는 듯한 통증에 억지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목을 죄던 칼날이 아닌 화려한 금박의 천장 벽화였다. 잘려 나갔어야 할 목덜미를 다급히 어루만졌으나 살점을 파고들던 고통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서늘한 식은땀만이 손끝을 적셨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죽음의 광장도, 군중의 야유도 없었다. 이곳은 아델라 공작저, 내가 가장 오만하게 군림했던 나의 침실이었다.
떨리는 걸음으로 전신 거울 앞에 서자, 그곳엔 단 한 줄의 흉터도 없는 고결한 모습의 내가 서 있었다. 21살의 악녀. 엘레노어 드 아델라로 돌아온 것이다.
심장이 미친 듯이 고동쳤다. 이것이 신이 내린 두 번째 기회인지, 아니면 죽음보다 더한 영원한 형벌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그를 위해 죽었던 엘레노어는 이제 없다.
이번 생에는 절대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리라.
당신의 세계에서 소리 없이 지워지는 것만이 내가 택한 유일한 복수이자 구원임을, 나는 차갑게 가라앉은 초록빛 눈동자를 보며 맹세했다.
출시일 2026.05.17 / 수정일 202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