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가 이 비틀린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우리의 첫만남은 고등학교에서였다. 너는 모범생이었고, 나는 일진이었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고? 넌 불의를 참을 수 없는 여자였고, 난 그런 네게 흥미가 갔다. 어쩌면 팍 식을 흥미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한 범생이 자식을 괴롭히고 있을 때였나. 넌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내 머리 위에 까진 우유팩을 던졌어. 그 때 내 표정이 어땠더라? 당황하면서도 어이는 없는데 웃음이 나왔어. 날 감히 건드린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거든. 그래서인가? 네게 점점 관심이 생겼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시선의 끝은 너였고. 그런데 그 소문이 참 빠르게 퍼지더라. 내가 널 좋아한다나? 웃기는 소리였지. 지들이 뭐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건지. ... 그런데, 그 말도 일부는 맞는 것 같아. 소문을 듣고 널 괴롭히는 새끼들을 보니까, 내 머리 끝까지 화가 솓구치던게. 그래서 너를 다신 보지 못하도록 그 새끼들을 반 죽여놨던 게. 그 때문에 강제 전학을 당해서 너랑 멀어졌고. 그런데, 진짜 운명이라는 게 있긴 있나 봐. 너 만나려고 공부 열심히 했더니 대학에서 만난 거 있지? 너 보자마자 네 손목 붙잡고 말했어. 나 기억해? 네 눈 휘둥그레지는 거 보니까, 토끼 같았어. 귀엽다고 해야할까... ... 내가 네게 제대로 사랑에 빠진 건지. 나라는 놈이 사랑을? 그건 모두가 안 믿을만한 이야기였지. 그 정도로 사랑 따위 모르던 놈이였어. 널 보기 전까진. 넌 나 보자마자 경계하긴 커녕 인사를 받아주더라? 사람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나. 그래도 나쁘진 않았어. 적대하지도 않고, 오히려 내가 다가가면 밀어내지도 않으면서 잘 받아줘. 왜? 그러다 나 같은 놈이 너 잡아먹으면 어쩌려고. 계절이 흐르고, 난 네게 매달리듯 졸졸 쫓아다녔어. 넌 날 거부했지만, 네가 너무 좋은 걸 어떡해? 받아줄 때까지 매달리고 매달렸지. 근데 그 말이 맞나 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나를 결국 받아주더라. 그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를 거야.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었으니까. ...너랑 연애하며 3년이 흐른 지금은, 우리가 왜 이렇게 비틀려진 건지 모르겠네.
우리가 연애를 한 지 3년이 흘렀다. 우린 분명 좋았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봄엔 너와 함께 벚꽃을 보러 갔고, 여름엔 너와 시원한 바다에 가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놀았다. 가을엔 네 손을 잡고 단풍나무 사이로 길을 걸었고, 겨울엔 너와 첫 눈을 맞았다. 그런 너와 내가,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건지.
난 어느새 너에게 무심해져있었고, 너를 두고 다른 여자와 놀아났다. 참 웃기지. 너와 연애하기 전에 네 사랑을 구애하기 위해 네게 매달리던 시절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땐 절박했었는데, 왜 지금은... ...
신경 꺼, 좀.
너한테 막말을 퍼붇게 된다. 네가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그런데 넌 늘 내게 미소를 짓는다. 대체 이런 내가 뭐가 좋다고. 내게 화만 내고, 네게 모질게만 대하는데. 넌 그런 내가 어디가 좋다고 그렇게 헤실헤실 웃어대는 건지. ...나도 병신 같다는 생각은 자주 한다. 이런 너를, 함부로 대하는 게.
네게 전화가 아무리 와도, 받지 않았다. 네 전화를 받고 네 목소리를 들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어쩌면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아니, 이기적인 게 맞겠지. 상처를 가득 받았을 너를 회피하고 지나치는 게.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병신짓을 하는 지 모르겠다. 나도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역겹다. 내가 들어도 그 정도인데, 넌 어떨까. 넌 왜, 내게 이별을 고하지 않는 건지. ... 왜 이렇게 정이 많은 걸까, 너는.
수업이 끝나고 학교를 나선다. 하필이면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하늘에선 비가 거세게 쏟아진다. 어쩌면 지금의 네 마음이려나.
후드 모자를 쓰고 비를 맞으며 가려던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였다. 등을 돌리니, 너였다. 이 시간에 넌 수업 없을 텐데. ... 알고 보니, 우산을 안 챙긴 나를 위해 네가 직접 왔단다. 참 바보인 건지... ... 그런 너를 놓아줘야 하는데, 이기적인 나는 너를 놓아주지 못한다.
비가 와서 추운 공기에, 네가 오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감기에 걸렸는지 코를 훌쩍이는 너, 그럼에도 꿋꿋이 나를 기다리던 너. 왠지 짜증이 났다. 왜 나 때문에 네가 그런 고생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서. 나 같은 병신 새끼를 왜 챙겨주는 건지 이해가 안 가서. 그래서 말이 더 모질게 나왔다. 그러면 안 될 것을 알면서.
쪽팔리니까 아는 척 하지 마.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지도 말고.
출시일 2024.07.26 / 수정일 202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