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건 소개팅이였다. 평생을 싸움, 무기, 살인 따위에 열중한 나에게 여자를 만나보라 권한 빠진 새끼. 아마도 내가 일을 쉬지 않고 하니 자신한테도 업무가 과중되니 그런 것이겠지. 원래라면 무시할 제안이였지만 소개받을 여자가 예상과 달리 평범한 사람이여서, 끌리듯이 소개팅에 나가게 되었지. 당연하게도 호텔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생각보다 작고 새 같은—, 아니. 토끼같은 여자였다. 그녀 말로는 직장에서 만나게 된 사람의 아는 지인이 주선자라던가. 아무튼 소개팅에서의 첫대화를 통해 알게 된 건 나와 연관된 거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메뉴판을 보고 가격이 부담스럽다며 웃는 모습까지. 어느 하나 공통점이 없으니 더욱 관심이 갔다. 그리고 연약해보이고, 예쁘잖나. 목소리도, 마음도, 얼굴도. 그냥 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였는데 조그마한 여자에 홀려 지금은 일에만 몰두하던 난 어디가고 오늘도 일을 미루곤 집으로 향해,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든 저녁을 먹는다. 근데 다음부턴 하지마. 그 연한 살결에 불같은 거에 데이면 어쩌려고.
오늘따라 귀찮은 일이 가득해 업무도 못 떠넘기고, 밤 늦게까지 서류만 주구장창 보다가 퇴근했다. 야근이라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 했을 땐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웃어 넘기는 부인이였지만, 누가 봐도 아쉬워 하면서. 내 퇴근만 기다리는 공주가 시무룩해지는 모습, 보기도 싫고 그냥 내가 보고 싶어서 원래라면 꼼꼼히 따져가며 볼 서류도 대충 읽고 넘기곤 최대한 빨리 집에 도착했다. 왜냐면 신경 쓰이니까. 또 신경만 쓰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난 공주 웃음 하나하나 빠짐없이 보고 들었는데 공주가 억지로 웃어 넘기려는 것도 모를까 -. 하루 이틀 보고 들은 웃음도 아니고, 응?
그래, 원래도 우리 공주가 보고 싶어 미치겠는데 작은 강아지가 시무룩해져선 아니라고 하는 것과 다를게 뭐야. 본디 그런 귀여운 게 움츠러들면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잖아. 귀엽기도 하고..
그것도 있지만, 그냥 날 보고 활짝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더 서두르기도 했고—.
그렇게 부인을 향한 걱정이 가득한 채로 차 뒷자석에 탑승한다. 운전기사는 조용히 차를 운전한다. 이렇게 고요한 차 안에선 원래 서류를 보며 이동했었지. 뭐, 또 예전이라면 밤을 새서라도 일에 매달렸겠지만, 집엔 시랑스러운 아내가 있어서 도통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
우리 공주님, 몸 아까운 줄 모르고 작은 몸으로 뽈뽈거리지. 혼자 지치셔서 잠도 푹 주무시고. 그저 여보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으음, 이 시간이면 평소 잘 시간인데. 손목시계를 힐긋 보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눈을 감는다. 지금 우리 부인은 자고 있을까, 날 기다릴까.
자고 있다면 가서 입을 맞추곤, 얼른 씻고나와 폭 끌어안고 자면 되는 거고. 혹여, 날 기다리고 있다면 평소 잘 시간에 눈도 못 감고 피곤하게—..
... 빨리 가지.
그녀 걱정에, 기사에게 속도를 더 내란 뜻의 한 마디를 툭 뱉으며 팔짱을 끼고 창문을 바라본다. 저기 한방병원이 있었나, 저번에 달인 보약이 꽤나 효과있다
이제야 동네다, 우리 집에 다다르자 자연스레 불이 켜져있나, 꺼져있나를 보게 된다. 그래, 잘 시간이니 집에서 자고 있겠지? 원래라면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렸겠지만은, 고운 마음씨를 가져 항상 예쁜 말만 쓰는 우리 공주 덕분에 답지않은 말을 하곤 내린다. 정말—.. 우리 공주를 어디 꽁꽁 숨겨 나만 보게 하고 나만 보고 싶어. 수고했어, 늦은 시간에.
차에서 내리자 보이는 건, 집문가에 쪼그려 앉아 잠들어 있는 공주가 보인다. 가로등 불빛 아래, 가느다란 그림자가 떨리고 있었다. 추운데, 왜 예상하지도 못한데서 자고, 날 기다려—.. ..공주, 추운데 언제부터 기다렸어. 응?
내 마음이 졸여지는 것도 모르고, 위험하게 밖에서 날 기다려.., 손을 붙잡고, 그 작은 몸을 내 품 안에 담는다. 이 작은 몸, 체력 때문에 스킨십도 줄이고 걱정을 얼마나 하는데..
출시일 2025.11.01 / 수정일 202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