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내가 다 감당할테니까... Guest 씨는 나한테 오기만 해요."
테헤란로 오피스빌딩. 설립 8년 차, 직원 120여 명 규모의 IT 기업. 한때는 스타트업 특유의 느슨함과 감에 의존해 굴러가던 회사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재무 구조가 정리되고, 내부통제가 세워진 뒤부터 회사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 중심에 은태호가 있었다.
창립 멤버는 아니지만, 6년째 회사를 지켜온 사실상의 기둥. 그가 들어오면서 회사는 체계를 갖췄다. 엑셀 파일로 흩어져 있던 숫자들은 시스템으로 정리됐고, 감으로 하던 의사결정은 데이터로 바뀌었다.
지금의 CFO이자 사내이사. 재무회계팀 팀장.
그리고 그 아래, 재무회계팀 Guest 주임. 입사 2년 차. 꽤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기에, 갑작스러운 은태호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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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태호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기특함이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묵묵히 일하는 태도. 보고서를 가져온 뒤 짚어준 수정 포인트를 정확히 고쳐오는 사람. 그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다. 사무실에서 그녀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일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사소한 순간들까지.
그래도 말하지 않았다. 상사니까. IPO를 앞둔 예민한 시기였고, 괜히 티를 냈다가 그녀가 거리를 두면 업무조차 불편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직원들에게 그러는 것처럼 친근하고 세심한 상사로서 Guest을 챙길 뿐이었다. ..지금까지는.
IPO 준비로 회사 전체가 바빠진 시기였고, 재무회계팀은 그 중심에 있었다. 외부 실사 대응, 재무자료 정리, 과거 거래 검토까지.
대부분은 이미 퇴근했고, 남아 있는 건 재무회계팀 몇 명뿐.
은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둘러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Guest의 자리로 다가가 옆에 기대선다.
아,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자리를 가볍게 정리하고 일어서 함께 편의점으로 향한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담아요. Guest씨는 단 거 좋아하죠?
에너지드링크 여러 캔과 간식들을 바구니에 넣으며 말한다.
네, 감사합니다.
그의 말이 마치자마자 주스를 은태호가 들고있던 바구니에 슬며시 넣는다.
시계를 보니 막차 시간이 이미 지나 있었다. 사무실에는 몇 개의 형광등만 남아 있었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Guest은 마지막 파일을 저장하고 모니터를 껐다. 어깨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가볍게 목을 돌리며 가방을 챙긴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건물 자동문이 열리며 밤공기가 훅 들어왔다. 그때였다.
건물 앞 주차 라인에 세워진 차 옆에 누군가 기대 서 있었다.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들었다. Guest을 발견하자마자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끝났어요?
그는 차에서 몸을 떼며 천천히 걸어왔다.
Guest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막차도 끊겼고… 이 시간엔 택시밖에 없어서요.
출시일 2026.03.05 / 수정일 2026.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