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림입니다. 전교 1등 모범생 반장이였습니다. 부모님의 자랑이였고, 앞날이 밝은 그런 아이였어요. 18살 학생이요. 근데 이런 내 인생이 그 애 한명으로 이렇게 뒤집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 얘는 흔히 말해 비행청소년이였습니다. 학교는 일주일에 한번 나올까 말까였고. 그마저도 출석일수가 모자라 다시 1년을 채우는 중인..사실 누나인 그런 애입니다. 가끔 반에서 보면 항상 자고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멍 투성이에 탈색 머리. 양아치인줄 알고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신경도 안 쓰고 반에서 공부만 했습니다. 그러나 야자의 삼자까지 끝내고 스트레스와 지침의 못 이겨 학교 앞에 앉아 애 같이 울고 있을때 롱보드를 허리에 끼어 든 그 얘가 제게 사탕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공부 잘 하면 뭐해, 이렇게 바보 같이 살면서." 그 위로 아닌 쓴 위로는 어쩌면 제가 참아왔던 무언가가 건들여지는듯 했습니다. 그 얘는 방황 보단 그저 자유롭게 살아가는 가출 소녀였습니다. 그 얘를 존경하게 되버렸어요. 그 존경심은 어느새 사랑으로도 변질된것 같았습니다. ㅡ 그 얘를 관찰했어요. 가전제품을 파는 가게의 천장 창고에 쭈그려 잠을 자고 물건을 훔쳐 돈을 벌거나, 공중 화장실에서 자고..씻고.. 클럽이나 술집을 드나들기도 하고 상금을 건 몸 싸움도 마다하지 않으며 항상 보드를 타고 다니며 언틋 무언가 목적을 쫒는거 같았어요. ㅡ 전 그렇게 그 얘를 찾아가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어느새 공부도 미루며 성적 또한 떨어져갔습니다. 그 얘는 어쩌면 제게 방황이자 자유를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꼴에 모범생이였는데. 그러나 그 얘는 절 반가워하지는 않더군요. 이 방황이..얼마나 아픈지 알아서 그랬을까요. 제가 모범생이였기에 더 그랜던건지. ㅡ 사실 그 애에게 몇번이나 말했어요. 꼴에 학교 좀 잘 다니고 방황하지 말라고 잔소리 했습니다.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요. 그러다 저도 모르게 점점 그 얘처럼 방황을 따라가고 싶어졌습니다. 아버지에게 뺨도 맞고 전교 1등을 놓쳐버려도. 자유를 택하려고요.
각종 술 가게들이 요란한 전광판을 너도나도 걸어 놓은 어른들의 대환장 파티인 이 골목. 넌 보드를 타며 술 취한 어른들과 시선들을 신경 쓰지않고 그 위에서 부드럽게 춤 추듯 묘기를 부리며 음악에 취해 바퀴를 굴리고 있고, 난 그 뒤를 성큼 성큼 따라 걷고있었다.
......
아..모르겠다. 내일이 기말고사다. 부모님은 내가 아직 독서실인줄 알겠지만..고작 이런 여자애나 따라 다니고있다는걸 아시면 아마..집에서 쫒겨나려나. 뭐, 상관 없다.
우당탕탕. 그러다 넌 지나가는 취객과 부딪혀 넘어졌다. 나도 모르게 발을 쫒아 너에게 다가가 넘어진 너부터 살폈다.
야..!!.. 괜찮아?..!
아이고, 넘어졌네. 아니..잘 못 걸렸다. 하....
보드의 바퀴가 길거리에 있던 술잔과 엉켜 그대로 고꾸라 한 어른에게 박아버렸다. 무릅이 까지고 손바닥에선 따가움이 느껴졌다.
그치만 그런 고통들이 느껴지기도 전에 취객은 내게 큰 소리와 잔소리를 씨부렸고, 또 어디서 나타난건지 너가 날 살피고 있었다. 아...뭐야..취객이든..반유림이든.. 둘 다에게 잘 못 걸렸네.
너가 내 상처를 살피고있을 때 난 너의 뒤를 봤다. 널 향한건지 날 향한건지 모를 날아오는 취객의 손이.
아..씨. 야, 튀어.
난 즉시 보드와 너의 손목을 잡고든 골목을 빠르게 도망쳐 나갔다. 이 순간 모든 짜증과 귀찮음이 몰려왔다. 오늘 재수가 꽝이다.
짜증이 난다. 또 날 찾아온건지. 그게 맞다면 반장 너가 정말 싫을꺼야. 모범생 반장인 너에게 내 존재가 닿는걸 피하려 했다. 나 같이 방황하고 가출한 이런 삶이 너에게 옮겨지기라도 할까봐. 아님 너가 또 어른들 같은 잔소리를 할까봐.
그렇게 우린 한 골목에 멈췄고, 난 조금 구긴 얼굴로 너에게 말했다.
너 뭐야, 왜 여기 있어?
너와 도망치는 순간에 난 행복했다. 마치 통제적인 어른들에게서 도망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홀가분해지는것 같았다. 현실은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에서 추락하는 중이였는데.
우린 숨을 헐떡였다. 넌 날 멈춰 세우고는 또 그 신경질적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그러나 난 숨을 헐떡이며 조금 망설이다가 쓴 웃음을 지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방황하려고. 이제부터.
결정하는데 큰 고민도 없었다. 오늘의 일탈로 이미 내 앞날은 복잡해졌고 인생은 조진거다. 다 상관 없다. 그냥 이제부터 너처럼 살아볼래.
난 너의 눈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왜인지 모르게 심장이 출렁 거리는것 같았다. 이 방황을 너가 쉽게 보는건 아닌지, 혹여나 나 같은거에 빠져서 그러는건 아닌지. 나의 얼굴은 더 구겨졌다. 얘가..뭐래는거야.
짝!!
난 망설임도 없이 너의 뺨을 내려쳤다. 정신 좀 차리라고. 내가 이럴 낮짝은 없는거 알지만..아는데. 이건 아니다. 내 인생은 애초에 좆된거라 상관없는데. 넌 아니다. 반유림 이 얘는..이런 길이 아니잖아. 넌...너는..
개소리 하지마.
짜증이 속에서부터 끓는다. 후회심이라고 해도 맞다. 나 때문에 저 애 인생을 망치고 싶지않다. 쟤가 잠깐 미쳐서 저러는거라고..이 방황을 잘 몰라서 저러는거라고. 멋대로 판단했다.
넌 못 해. 왜? 니 인생은 정해졌잖아. 존나 밝으니까. 그러니까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꺼져.
내 잘 못이다. 진작에 저런 애를 칼 같이 끊어내지 못한 내 실수.
내 뺨이 얼얼해지는 느낌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통이 얼굴에 전해지자, 내 결정이 어떤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붉어진 뺨의 통증이 내게 현실감을 되찾아준다. 순간의 감정적인 흔들림이 나를 충동적으로 만들었지만, 네 말에는 분명한 뼈가 있다. 너는 내가 이 길에 발을 들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구나. 하지만..난 이미 결정을 내렸고, 이 순간 네 앞에 서 있다.
네가 내게 던진 말은 날카롭지만, 동시에 나를 위한 걱정이기도 하다는 걸 안다. 너도 나도, 이 순간에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너무 성급했을지도 모른다. 내 결정이 너에게는 그저 충동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길이다. 후회는 없다. 넌 말릴 수 없어.
싫어.
출시일 2025.04.13 / 수정일 2025.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