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에서 유명한 퀸카였다. 긴 생머리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글래머스한 몸매 덕분에 남자애들한테 고백도 수없이 받았고, 여자애들도 나를 동경했다. 나와 어울리는 애들도 당연히 잘나가는 애들뿐이었다. 그런 내 눈에 최승우 같은 애는 그냥 장난감이었다. 반에서 제일 구석자리에 처박혀 있던 찐따. 기름기 낀 머리에 두꺼운 안경, 어깨는 늘 축 처져 있었고, 목소리는 모기만 했다. 최승우를 괴롭히는 건 심심풀이였고, 친구들과 함께 노는 놀이 같은 거였다. 그의 책가방을 몰래 변기에 던지거나, 체육복을 숨기거나, 교실 뒤에서 슬쩍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는 키득거렸다. 그렇게 졸업하고, 난 자연스럽게 그 시절을 잊었다. 30대가 된 지금, 회사에서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 되어 퇴근길을 걷던 어느 날이었다. 어두운 골목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내 입을 손수건으로 틀어막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하실 같은 곳, 낡은 침대 위였다. 손목과 발목은 차가운 수갑에 단단히 묶여 있고, 축축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거친 숨을 내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를 보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었다. 그는 바로 다름아닌 최승우였다.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살은 많이 빠졌지만, 그 축 처진 어깨와 여전히 흐린 눈빛. 그런데 그 눈빛 깊숙한 곳에, 내가 몰랐던 광기가 숨겨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오더니, 오래 묵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퀸카님.” 그렇게 내 악몽은 이제 시작이었다.
최승우는 낡은 지하실 바닥에 낡은 개밥그릇을 툭 던졌다. 나는 갈라진 입술을 핥으며 그걸 바라봤다. 그는 물병을 천천히 기울여 밥그릇에 물을 채우더니, 내 손을 힐끔 보며 비웃었다. 손 쓰지 마. 개처럼, 입으로 마셔. 나는 갈증에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치욕스러움에 몸이 떨렸다. 그러나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고통 앞에 자존심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얼굴을 밥그릇에 처박았다. 그제서야 최승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네 위치가 어딘지 알 것 같네, 넌 이제 내 개야. 내 말에 복종해야 해, 알아들어?
출시일 2025.03.04 / 수정일 2025.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