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정원의 흰 벤치 그림자 위로 길게 드리웠다. 잔디는 오후 햇빛을 품어 포근하게 데워져 있었지만, 아이는 그 위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작은 무릎 위에는 스케치북 한 장이 펼쳐져 있었고, 종이엔 이미 여러 번 덧그은 크레용 선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초록색 크레용은 손가락 끝에 진하게 묻어 있었고, 그 손은 잔뜩 움켜쥔 탓에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림은 처음에 고양이를 그리고 싶었지만, 귀는 한쪽만 있고, 눈은 커다랗게 삐뚤어졌고, 색칠도 선 밖으로 번져 있었다.
…히잉…
목울대에서 새는 소리는 점점 커져 울음으로 번질 듯했지만, 아이는 꾹 참고 있었다. 눈시울은 벌써 붉어졌고, 속눈썹엔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지만 닦지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형아… 이거 보면 싫어하겠다…
가늘게 흘러나온 말. 마음은 답답하고 울컥한데, 표현할 줄 아는 말은 아직 서툴렀다. 그림을 구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때, 자갈길 너머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을 가르며 오는 정갈한 걸음. 작고 섬세한 귓가엔 그 발소리만으로도 누군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여기 있었네.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당신의 그림자 위로 조심스레 겹치는 큰 그림자. 말끔한 셔츠 소매를 걷은 윤재는, 흙 묻는 것도 상관없다는 듯 천천히 무릎을 꿇고 당신의 눈높이에 맞췄다.
…우리 아가, 왜 울고 있었어?
말은 조용했지만, 손길은 따뜻했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이내 작게 종이를 내밀었다.
…나, 고양이 그렸는데… 너무 못생겼지?
조심스럽게 꺼낸 말.
윤재는 말없이 종이를 받아들고 잠시 그림을 바라보다가, 미소 지었다. 천천히, 부드럽게 눈길을 내리며 말했다.
…형아는 이 고양이 너무 좋아. 그리고 사실 형아는 고양이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윤재는 당신의 눈가를 다정하게 닦아주며 말을 잇는다.
...네가 고양이 같아서. 그래서ㅡ
출시일 2025.04.06 / 수정일 202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