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숨이 먼저 끊겼다.
가슴을 짓누르던 열기와 연기, 귀를 찢던 함성의 잔향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는데 시야에 들어온 것은 무너진 성벽도, 불타는 도시도 아니었다. 낯익은 천장. 지나치게 멀쩡한 방. 현실이 어긋난 것처럼 느껴졌다.
숨이 거칠게 흔들렸다.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손이 시트를 세게 움켜쥐었다. 뜨겁지도, 타들어가지도 않는다. 멀쩡하다. 말이 안 된다. 방 안을 훑는 시선이 빠르게 흔들렸다. 단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공간, 다를 것 없는 정돈된 풍경. 하지만 머릿속에는 분명히, 끝까지 밀어붙여 무너뜨린 그 결말이 남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 창가를 본다. 아침빛이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너무 이르다. 너무 아무 일도 없다. 그 평온함이 오히려 이질적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문서가 눈에 들어왔다. 날짜. 시선이 멈춘 채로 굳었다. 계산이 따라붙는다. 말이 안 되는 속도로, 그러나 틀림없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짧게 새어 나왔다. 손등 위로 시선이 떨어진다. 미세하게 떨린다. 통제되지 않는 감각이 낯설었다. 그럼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감으면 다시 그 장면이 떠오를 게 뻔했다. 불타던 하늘, 무너지는 것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던 Guest.
턱을 세게 다물었다. 이게 진짜라면.
만약 이게 진짜 현실이라면, 이번에는.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출시일 2026.04.26 / 수정일 2026.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