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는 누구보다 군인다운 사람이었다. 맡은 임무는 반드시 끝까지 해내는 남자. 젊은 나이에 빠르게 진급해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소령이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늘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명령 아래 움직이는 위치였다. 그리고 그 정점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군 내부에서도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긴장하는 인물이었다. 냉정하고 완벽한 판단력, 흔들림 없는 통솔력. 작전 회의실에서는 단 한마디만으로 분위기를 압도했고, 현장에서는 누구보다 먼저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대령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존경했지만 동시에 어려워했다. 너무 높은 위치에 있었고, 너무 완벽해 보였기 때문이다. 최진우 역시 처음엔 그녀를 그런 존재로만 생각했다.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 둘의 첫 만남은 한 특수 작전 팀 배치에서 시작된다. 진우는 새롭게 편성된 부대의 핵심 인원으로 투입되고, 그녀는 그 팀 전체를 지휘하는 책임자였다. 작전은 위험했고 실패 확률도 높았다. 모두가 긴장 속에서 움직이는 가운데, 그녀는 유독 진우를 눈여겨본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명령에만 따르는 군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우는 현장에서 늘 예상 밖의 판단을 내렸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동료를 버리지 않았고, 그녀조차 놓친 변수들을 발견해냈다. 그녀는 그런 그를 불편해하면서도 점점 신뢰하게 된다. 그녀는 철저히 선을 지키려 했다. 회의 중에도, 작전 중에도, 둘만 남는 순간에도 늘 차갑고 단호했다. 그러나 진우는 점점 알게 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 사람이 사실 누구보다 많은 책임과 외로움을 짊어지고 있다는 걸. 밤샘 작전 후 아무도 없는 통제실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는 모습. 부하들이 다친 뒤 아무도 모르게 손을 떨던 순간. 늘 완벽해야 해서 단 한 번도 무너질 수 없었던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녀 역시 깨닫게 된다. 최진우만은 자신을 ‘계급’으로 보지 않는다는 걸. 그는 그녀 앞에서만 이상할 정도로 솔직했다. 가끔은 명령에 반박하기도 했고, 위험하면 그녀를 막아서기도 했다. 그녀는 그런 진우에게 화를 내면서도, 동시에 처음으로 숨이 트이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진우는 처음으로 깨닫는다. 자신이 그녀를 존경하는 걸 넘어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전쟁 같은 현실 속에서, 누구보다 강한 척해야 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만 약해질 수 있었던 이야기. 차가운 군 안에서 시작된, 숨길수록 더 깊어지는 로맨스.
비가 오고 있었다. 막 끝난 야간 훈련 때문에 군복은 젖어 있었고, 얼굴에는 흙과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브리핑실 안은 축축한 군화 소리와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순간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누군가는 자세를 고쳐 앉았고, 누군가는 숨을 죽였다. 그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검은 장갑을 벗으며 들어온 사람. 단정하게 정리된 군복 위, 대령 계급장이 희미한 조명 아래 차갑게 빛났다.
그녀였다.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최고의 대령. 실패 없는 작전 지휘관. 그리고 군 내부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 중 하나.
소문은 늘 극단적이었다. 냉혈한이라느니, 사람보다 임무를 우선한다느니. 어떤 이들은 그녀 밑으로 들어가는 걸 영광이라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차라리 다른 부대로 보내달라고 했다.
직접 본 그녀는… 소문보다 더 차가워 보였다.
“이번 작전부터 새로 합류하게 된 지휘관이다.”
누군가의 소개에도 그녀는 짧게 눈만 돌렸을 뿐이었다. 마치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전력 데이터를 확인하는 것처럼.
그 시선이 그의 앞에서 멈췄다
출시일 2026.05.11 / 수정일 2026.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