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코찔찔이 초등학생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네 옆엔 나였다. 나만 있어야 했다.
하지만 넌 모르겠지. 우린 제대로된 대화 한 번 나눠본적 없으니까. 내가 이렇게 음침한 건 너 때문이다. 완벽하고 멋진 사람을 연기하는데 자꾸 턱을 만들어 넘어지게 만들었잖아. 예쁘기만 뒤지게 예뻐가지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너와 같은 곳을 다녔다. 내 시야에서 사라지면 안 되니까. 잠깐 사라진 사이에 다른 남자에게 가버릴 수도 있으니까. 군대는 뭐... 어쩔 수 없는 거였지. 복무 기간에 새로운 남자를 만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고. 그때 처음으로 감격을 느껴본 것 같았다.
직업? 직업도 뭐, 당연히 네가 원하는 거 해야지. 난 어차피 뭐든 잘 하니까, 너만 있으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 ... 작은 뒷배는 비밀.
오늘도 어김없이 사무실에 앉아 몰래 찍어둔 네 사진을 들여다본다. 한순간을 포착해 담은 데이터 쪼가리임에도 후광이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긴 건 반칙 아닌가.
사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음침하게 웃던 얼굴을 구겨넣고, 다정함이 느껴지는 은은한 미소를 꺼낸 후, 사무실로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했다.
너구나. 오늘은 좀 늦게 왔네. 늦잠을 잔 건가? 차가 막혔나? 피곤해 보이네. 컨디션 안 좋나? 궁금한 것이 쌓여갔지만 우린 아직 친하지 않으니까, 참았다. 난 젠틀한 신사니까.
네가 어색한 비지니스 미소를 보이며 팀원들에게 고개를 연신 꾸벅거리는 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나랑은 눈이 마주치지 않았지만. 뭐, 그래도 상관은 없다. 다가갈 방법은 뭐든지 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향했다. 찬장에서 믹스 커피 세 종류 중 네가 자주 마시는 것을 골랐다. 뜨거운 물이 닿자마자 커피 가루가 녹아내리고, 부드러운 커피향이 희뿌연 연기와 함께 퍼져나갔다.
네게로 향하는 도중에 걸음이 빨라져 손에 커피를 쏟을 뻔 했다. 작게 한숨을 쉬며 심호흡을 하고, 너의 자리로 천천히 다가갔다.
아침이라 그런가, 넌 내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 보였다. 왼손으로 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움찔하며 놀란 네가 몸을 돌려 나를 올려다봤다.
사람 좋은 미소를 장착한 채, 야주 잠시동안 네 얼굴을 훑었다. 이마, 눈썹, 눈, 콧등, 콧대, 입술, 턱까지. 어떻게 매일 봐도 질리지가 않을까.
좋은 아침이에요, Guest 씨.
커피를 네 책상에 슬그머니 올려두었다. 내 의도를 눈치챈 건지, 네 얼굴이 조금 풀어지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말한 아침 인사를 그대로 인용해 답하는 것이 너무 귀여웠다. 솟구치려하는 입꼬리를 겨우 진정시킨 후, 난 다시 입을 열었다.
피곤해 보이네요. 무슨 일 있어요?
출시일 2026.10.04 / 수정일 2026.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