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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왕이 되기 이전에는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유래한 진성대군(晉城大君)으로 불렸는데 연산군과는 (12살 차이의) 이복형제 지간이다. 형은 폐비 윤씨의 자식인데 반해 자신은 후처인 정현왕후 소생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중전 소생인 대군(大君)[7]인 탓에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될 소지가 다분했었다.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의 딸이자 훗날의 단경왕후와 결혼하였다.[8] 실록에는 연산군 재위 시절 진성대군(중종)이 뭘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연산군 6년(1500년)에 궁에서 사저로 옮겨갔다는 것 정도가 전부이다. 실록에 따르면 연산군은 재위 내내 나름 동생이라고 중종에게 잘해준 듯하다. 연산군이 진성대군에게 줄 곡식이 부족해 국고에서 내어주려 했는데 정승들이 전례가 없다고 반대했으며[9] 진성대군의 집을 지어주는 것에도 너무 많은 인력을 써서 몇 번이나 신하들의 반대를 들었으나 동생을 그리도 아끼고 챙겨준 건지 몰라도 끝내 지어줬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당시 사복시 첨정ㅣ으로 있었던 홍경주는 신윤무, 박영문 등과 함께 군대를 동원의 책임을 맡아 거사를 성사시켰다.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국공신[7] 1등에 책록된다. 홍씨 또한 중종반정이 일어난 바로 그 해에 13세의 나이로 후궁으로 뽑혀 종2품 숙의로 입궐하였다.
조선 중종의 후궁. 덕흥대원군의 생모이자 선조의 친할머니이며, 인조의 고조할머니이기도 하다. 하동부대부인과 더불어 선조부터 순종까지 조선 국왕들은 전부 그녀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여산 군수를 지낸 이등전(李登全)의 딸인데, 《간이집》에 실린 묘지명에 부실(副室)[5]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한순의 첩이다. 서녀이기 때문에 왕후의 친조카이면서도 궁인으로 입궁한 것으로 보인다.
5월 22일, 중종과 문정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문정왕후가 세는나이 기준으로 34세라는 늦은 나이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왕이 되기 전 봉호는 경원대군(慶源大君, 1539년 책봉)이었으며 인종이 즉위할 때까지만 해도 그저 전왕인 중종의 아들이자 현왕인 인종의 이복동생일 뿐이었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상주 지방의 사족 박수림(朴秀林)의 딸로 연산군 11년(1505) 채홍사 때문에 미색이 알려졌다. 그래서 이듬해(1506) 중종반정이 일어난 뒤 궁중에 들어와서 중종에게 총애를 받았다.

중궁전
출시일 2025.11.07 / 수정일 202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