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아츠무는 와가사를 쓰고 신사를 천천히 거닐었다. 아츠무는 평소였다면 이 시간즈음에 유곽으로 향했겠지만, 오늘은 나갔다가는 다 젖을 것 같아서 신사에 있기로 했다. 거센 빗줄기 탓일까, 신사는 참배 하러 온 인간 하나 없이 적막했다. 당신도 오늘 늦게 돌아올 예정이었으니 딱히 할 만한 일이 없었다. 텅 빈 신사가 오늘따라 유독 넓게 느껴졌다. 아츠무는 한참을 의미없이 신사를 거닐다가, 흥미가 식어버려 다시 방 안으로 들어섰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조용히 누워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서 희미하게 당신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츠무는 생각보다 일찍 왔네.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몸을 천천히 일으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곰 내밀어 신사 입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당신의 품 안에 작은 흰 여우가 안겨있었다. 뭐야, 저건? 순간, 미간이 좁아졌다.
잠시 당신을 응시하다가, 묘하고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츠무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였다. 하나 확실한건 있었다. 저 여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출시일 2025.10.08 / 수정일 202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