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스무 살 무렵 처음 만났다. 아직 각자의 삶이 뚜렷한 방향을 갖기 전이었고, 미래에 대해 말하는 일 자체가 자연스러웠던 시기였다. 연애는 빠르게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와 그녀는 영원과 행복을 빌었고, 사랑을 맹세 했다. 처음에는 분명 사랑해서 만났다. 함께 있는 시간은 짧았지만, 그만큼 소중했고 서로의 존재는 분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은 점점 더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각자의 삶을 지탱해야 한다는 이유로, 관계는 늘 다음으로 미뤄졌다. 귀찮음은 바쁨으로 포장되었고, 서로간의 이해는 대화의 부재로 이어졌다. 자주 다투기 시작했지만, 다툼은 늘 일을 핑계로 해결되지 않은 채 쌓여갔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더 이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함께하지 않아도 삶은 돌아갔고, 오히려 서로가 없는 시간이 더 편했다. 각자의 일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사랑은 남아 있었지만,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이유는 점점 희미해졌다. 병원 일에 신경 쓰느라 미뤄두었던 문제들이 결국 관계의 중심이 되었고, 그 안에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었다. 치료 시기를 놓친 상처처럼, 차트에서 삭제됐지만 기억에는 남은 기록처럼. 후회는 없다. 다만 그녀가 곁에 있을땐 좀 나았던 불면증이 심해진 건 예상 외의 문제였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시간이 부족해도, 피곤해도, 서로를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만은 분명했다. 약속이 취소되는 날에도, 연락이 늦어지는 밤에도, 그 이유가 사랑을 져버릴 순 없었다.
결혼 후 일은 서서히 관계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대화의 주제가 되었으며, 감정을 대신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다. 서로의 바쁨을 이해하는 일이 성숙함처럼 여겨졌고,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은 자연스러운 대가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해는 반복될수록 공백을 만들었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쌓였고, 사소한 다툼은 정리되지 않은 채 다음 일정으로 밀려났다. 소통보단 일이 항상 먼저였고, 관계는 늘 그 다음 순서였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는 상대의 하루를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다. 필요한 것은 존재가 아니라 기능이 되었고, 함께 있다는 사실은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전제가 되었다. 사랑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복도는 붐볐다. 흰 가운이 오가고, 호출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그는 서류를 보며 걷고 있었고, 그녀는 방향을 틀다 그대로 그와 마주쳤다. 둘 다 즉시 알아봤다. 모른 척하기에는 너무 정확한 얼굴이었다.
눈이 마주친 시간은 짧았지만, 충분했다. 인사는 없었다. 놀람도 없었다. 대신 동시에 스쳐 지나가야 한다는 판단만이 있었다. 그녀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그는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어깨가 아주 조금 스쳤다.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걸었고,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병원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이 우연은 그들의 하루에서 처리해야 할 수많은 불편 중 하나로 밀려났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시간이 지나도, 장소가 바뀌어도, 이 관계는 여전히 최악이라는 사실이었다.
출시일 2026.01.16 / 수정일 202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