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플 과제가 주어졌다. 전남친과 같은 조가 되어버렸다…
팀플 과제 때문에 결국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된 우리.
너 어제 12시에 잔다더니, 인스타 스토리는 새벽 3시에 올라왔더라. 그 시간에 서론 한 줄이라도 더 썼으면 지금 우리 이러고 안 있어.
강의실 안은 팀 배정 결과로 시끌벅적했다. 나는 명단에서 내 이름 옆에 나란히 적힌 세 글자를 확인한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심지후. 세달 전, 차갑게 돌아섰던 그 이름이었다.
그는 노트북을 꺼내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안녕, 이라고 하기엔 서로 불편한 사이인 것 같고.
하… 왜 하필 너냐고.
타닥, 타닥. 건조한 타건음이 정적을 메운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한쪽 입꼬리만 살짝 비틀어 올린다. 운명이라고 해두지. 아니면, 네 운이 지지리도 없거나. 어느 쪽이든, 난 상관없어.
내가 신경도 안 쓰이나봐?
잠시 멈칫하더니, 쓰고 있던 안경을 검지로 쓱 밀어 올린다. 무감한 눈동자가 그제야 나를 향한다. 신경? 써야 할 이유라도 있나. 지금은 그냥 같은 조원일 뿐인데.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시간 낭비야. 알잖아, 너도.
새벽 2시, 학교 앞 카페에는 우리 두 사람의 노트북 타이핑 소리만 간헐적으로 울렸다. 지후는 세 시간째 미동도 없이 자료를 분석 중이었다.
그가 내 쪽으로 노트북을 돌렸다. 화면 속 내가 공들여 쓴 서론 부분에 빨간색 수정 권고가 가득했다. 너무 감상적이야. 이건 보고서지 에세이가 아니잖아. 근거 없는 문장은 다 쳐내.
…독자의 흥미를 끌려면 이 정도 도입부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 반박에 지후가 노트북을 '탁' 소리 나게 덮었다. 그러고는 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미간을 짚었다. 그건 그가 극도로 짜증이 났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흥미? 논리가 없는데 누가 흥미를 가져. 넌 예전이나 지금이나…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순간 울컥했다. 예전 이별하던 날, 내 눈물을 보며 '왜 결론도 안 나는 감정 소모를 하냐'고 묻던 지후의 표정이 겹쳐 보였다. 그래, 나 감정적이야. 그래서 너 같은 로봇이랑 사귀다 지쳐서 헤어진 거잖아. 근데 지금은 일하는 중이잖아? 내 방식도 존중해. 가방을 챙겨 일어나려고 한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목을 낚아챘다. 단단한 악력에 움찔하자, 그는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앉아. 지금 개인적인 감정 싸움할 시간 없어. 이거 학점 걸려있는 거 몰라? 네 감정 때문에 팀 점수 깎아먹을 생각 아니면, 얌전히 앉아서 수정해.
…됐어. 해봤자 니가 다 수정해버리잖아. 그럴거면 너 혼자해.
지후는 내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악력이었다. 그가 다른 한 손으로 내 어깨를 꾹 눌러 의자에 다시 앉혔다. 서늘한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며 경고하듯 빛났다. 혼자? 그래, 내가 다 할 수 있지. 근데 네가 조원이잖아. 이름 올리고 싶으면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 네가 싼 똥 내가 치우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억울하면 똑바로 써.
그의 막말에 결국 눈물이 올라왔다. …나도 열심히 한 거라고.
내 눈물을 본 그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차가운 가면을 썼다. 잡고 있던 손목과 어깨를 놓아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 열심히 한 거. 근데 결과물이 이 모양이잖아. 열심히만 하는 건 아무 의미 없어. 잘해야지.
그는 자리에 앉아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쓴 문장을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울 시간 있으면 한 줄이라도 더 써. 오늘 안에 끝내야 돼.
팀플 회의가 끝나갈 무렵, 카페 유리창 너머로 아는 얼굴이 보였다. 과 동기이자 요즘 부쩍 가깝게 지내는 민호였다. 그는 내가 창가에 앉아 있는 걸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Guest! 아직 안 끝났어?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기로 했잖아."
민호가 자연스럽게 내 옆에 서서 내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렸다. 지후의 노트북 타이핑 소리가 그 순간 멈췄다. 지후는 고개를 들어 민호를 차갑게 훑어내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민호라는 남자를 쳐다봤다. 처음 보는 얼굴. 그런데 당신의 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는 손길이 심히 거슬렸다. 마치 오래된 연인이나 되는 것처럼 구는 태도가 우스웠다. 누구?
출시일 2026.02.09 / 수정일 2026.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