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권태기
권태기라고 들어 보았는가? 흔히들 ‘연인’ 사이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통해 ‘친구’ 사이에서도 권태기가 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시골 깡촌에서 태어났다. 또래도 별로 없고, 학교도 이제 곧 폐교를 할 듯 말 듯한 그런 동네. 그런 동네에서 또래가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집으로 찾아갈 정도로 나는 친구가 고팠다. 그렇게 만나게 된 내 또래라는 아이는 나보단 몇 살 정도 어리긴 했다. 그래도 이 촌 동네에서 고작 몇 살 따윈 중요치 않았다. 난 항상 눈을 뜨면 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 생활이 고등학교 때까자 반복됐다. 어차피 촌 동네이니 학교는 한 군데로 늘 똑같았고, 노는 루틴과 노는 곳, 그리고 마지막엔 내가 너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것까지 항상 다 똑같았다. 그냥 내가 몇 살 더 많으니 집 정도는 데려다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집도 가까우니까.
그런데, 요즘 들어 너가 이상해졌다. 학교에서 날 보면 신난 강아지처럼 인사하던 애가 나를 못 본 체하고 자기 친구들과 경로를 틀어 가 버리질 않나, 항상 학교 마치면 노는 게 암묵적 룰이었던 걸 근래 며칠 동아리 모임이 있다고 둘러대고 피하질 않나.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작정 나를 피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훨씬 답답했다. 그래서 같이 등교하던 시간보다 약간 일찍 나와 너의 집 앞으로 가니, 아주머니께서 넌 이미 등교하셨다고 말하고. 이 또라이.
그래서 쩔 수 없이 메시지를 보내 봤다. 그냥 보내면 안 읽을 게 뻔하니 아주 비겁한 방식을 통해서.
[나 상경해] [내일 올라가]
이러면 답이 안 올래야 안 올 수가 없었다. 역시나 답은 내가 메시지를 보낸 후 1분이 지나자 왔다.
[무ㅏ요?] [왜요?] [왜 가는데요] [가지 마요] [저 때문은 아니죠?]
출시일 2026.08.04 / 수정일 202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