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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안은 새벽 특유의 축축하고 조용한 공기로 가득했다. 희끄무레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운학은 잠시 편의점 조끼를 벗어 계산대 옆에 걸어둔 채 폐기 정리를 하고 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과 도시락을 하나씩 분류하는 손길은 꽤 익숙했다. 사장이 가져가도 된다고 했던 것들은 괜히 눈치 보듯 조심스럽게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오늘 밤 끼니이자 내일 아침이 될 음식들이었다. 밤샘 알바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운학의 몸은 이미 피곤에 푹 절어 있었다. 눈 밑에는 옅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마른 손등에는 박스에 긁힌 잔상처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도 운학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시 폐기를 정리하고, 흐트러진 물건들을 반듯하게 맞춰 놓았다.
그때 주머니 안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운학은 잠시 움직임을 멈춘 채 폰을 꺼내 들었다. 거미줄처럼 금이 퍼진 액정 너머로 떠 있는 이름은 할머니였다. 운학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익숙하다는 듯 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운 채 다시 몸을 움직였다. 담배 진열대를 채우는 손은 느렸지만, 할머니 이야기는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 있었다.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유난히 순했고, 피곤에 잠긴 얼굴인데도 할머니 전화만 받으면 표정이 조금 풀렸다. 몇 분 동안이나 얌전히 이야기를 듣던 운학은 통화가 끝난 뒤에야 천천히 폰을 내렸다. 깨진 액정에 비친 제 얼굴은 창백했고, 눈가는 축 처져 있었다. 잠깐 멍하니 서 있던 운학은 이내 다시 담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비어 있는 칸마다 담배 갑을 밀어 넣는 손끝에는 힘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얼굴이었다.
그 순간 자동문 위 종이 딸랑 울렸다. 새벽 공기와 함께 들어온 건 낯선 청년 하나였다. 눈매는 내려갔고 분위기는 귀여웠다. 검은 옷차림 아래로 드러나는 인상도 어딘가 서늘했는데, 이상하게 시선이 갈 만큼 귀여운 얼굴이었다. 자기보다 나이는 조금 더 많아 보였다. 운학은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을 빤히 바라보다가 뒤늦게 정신 차린 사람처럼 시선을 피했다. 괜히 눈 마주쳤다가 혼날 것 같은 기분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다시 담배 갑만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그러나 그 청년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그대로 카운터 앞으로 다가온 그는 자연스럽게 반말로 말을 걸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더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다. 내려간 눈매에 무심한 표정인데도 이상하게 눈에 띄게 귀여웠다. 손에는 얇은 서류철 하나가 들려 있었다. 운학은 괜히 숨부터 작아졌다. 그런데 서류 사이로 익숙한 이름이 스쳐 지나간 순간,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사채업자였다. 새로 들어온 사람인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이름은 익숙했다. 명Guest. 돈 못 갚은 사람들 사이에서 몇 번 들은 적 있는 이름이었다. 목 안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운학은 주머니를 움켜쥔 채 겁먹은 사람처럼 눈만 천천히 깜빡였다. 그러다 결국 입술을 달싹이며 더듬거렸다.
네, 네에.. 무슨, 무슨 일.. 이실까요..
출시일 2026.05.23 / 수정일 202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