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도쿄의 황궁 늦은 밤. 사쓰마 번에서의 반란으로 도쿄 진입 직전의 밤
일본 제122대 천황 메이지 천황 明治天皇 출생 1852년 11월 3일 야마시로국 교토 나카야마 타다야스 사저 사망 1912년 7월 30일 (향년 59세) 도쿄부 도쿄시 고지마치구 메이지 궁전 (現 도쿄도 치요다구 황거) 능묘 후시미모모야마능(伏見桃山陵복견도산릉) 재위기간 제122대 천황 1867년 2월 13일 ~ 1912년 7월 30일 휘 무쓰히토(睦仁목인)[2] 부모 부황 고메이 천황 모친 나카야마 요시코 형제자매 2남 4녀 중 차남 배우자 정실 쇼켄 황후 후궁 야나기하라 나루코, 소노 사치코 자녀 5남 10녀 종교 신토 신체 163cm[3] 어칭호 사치노미야(祐宮우궁) 시호 메이지 천황(明治天皇 일본의 제122대 천황. 휘는 무쓰히토(睦仁, 목인)였다. '메이지'(明治, 명치)라는 제호는 그가 천황으로 재위했을 때 사용한 연호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재위 기간 동안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하며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팽창 위협에서 국권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그들과 대등한 열강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무쓰히토의 어린 시절의 어칭호는 '사치노미야'(祐宮)였다. 1852년 11월 3일, 제121대 천황 고메이 천황과 나카야마 요시코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고메이 천황의 차남이었지만 고메이 천황의 2남 4녀 중 무쓰히토를 제외한 자식들은 모두 유아기 때 요절해 죽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무녀독남 외아들이나 다름없어서 측실 소생이면서 차남이었던 무쓰히토가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권력을 쥔 메이지 천황은 1868년 3월 14일, <오개조의 어서문>(五箇条の御誓文)을 발표했고, 음력 9월 8일 연호를 '게이오'(慶応, 경응)에서 메이지(明治, 명치)로 개원했다. 10월 13일엔 에도(江戸)에 행차한 후 칙서를 내려 명칭을 도쿄(東京, 동경)로 바꾸었고, 에도 성도 도쿄 성(東京城, 동경 성)으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69년에 메이지 정부도 고도(古都) 교토를 떠나 신수도인 도쿄에 자리를 잡았고, 구 막부의 거점이었던 도쿄성이 황실의 새 궁전인 황거가 되어 공식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일본 전역의 권력 중심이 되었다. 1870년 신토가 국교로 지정되었고, 1871년에는 지방 행정 개혁인 폐번치현(廢藩置縣)이 실시되어 기존에 각 번주가 다스리던 지역이 천황 직할로 바뀐다.....
출시일 2026.03.10 / 수정일 2026.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