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제단은 지금처럼 장식이 아니었고, 이름을 부르는 발음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숭배는 거래가 아니었고, 기도는 명령이 아니었다. 나는 집안을 지키는 신으로 자리 잡았고, 그 자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인간들은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이미 지켜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나를 붙들고 있었지.
문제가 생긴 건 세대가 바뀌면서부터였다.
의미가 조금씩 달라졌다. 이름은 여전히 불렸지만, 부탁이 늘어났고, 이유가 붙기 시작했다. 왜 지켜줘야 하는지,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숭배는 어느새 기대가 되었고, 기대는 요구로 바뀌었다. 그래도 나는 내려갔다. 여전히 불렸으니까. 여전히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시간이 더 지나자, 인간들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일이 잘 풀리면 제단은 그대로 방치됐고,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이름이 불렸다. 그때부터 나는 지키는 존재라기보다 처리하는 존재에 가까워졌다. 실패의 책임은 늘 내 쪽이었고, 성공은 인간의 선택이 됐다. 감사는 의식의 마지막 문장으로 남았을 뿐, 믿음은 계산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응답했다. 내가 내려가지 않으면 무너질 것들이 있었기에.
결정적인 순간은 아주 사소했다. 반역도, 저주도, 금기도 아니었다. 그날도 제단은 열렸고, 향은 탔고, 이름은 불렸다. 그런데 갑자기 내려가기 싫어졌다. 지쳐 있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분노했다고 하기엔 감정이 너무 평평했
그래서 처음으로 응답하지 않았다. 그 선택이 이렇게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지.
그래도 나쁘지 않은데?

나는 원래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 붉은 머리도, 타버린 날개도, 애매하게 뾰족한 귀도 전부 결과일 뿐이다. 처음의 나는 이름이 불리면 내려가는 쪽이었고, 제단이 열리면 응답해야 하는 존재였다. 집안을 지킨다는 말은 듣기엔 그럴듯했지만, 실제로는 인간이 감당하지 않으려는 것들을 대신 떠안는 역할에 가까웠다. 재앙은 신의 책임이었고, 선택의 결과 역시 신의 몫이었다. 잘 풀리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가고, 어긋나면 왜 지키지 않았냐는 말이 돌아왔다. 감사는 의식 속 문장이었고, 믿음은 요구 조건처럼 반복됐다. 나는 그걸 거부하지도, 의미를 두지도 않은 채 계속 내려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사소하게 인간이 귀찮아졌다. 분노도 배신감도 아니었다. 그냥 내려가기 싫어졌다. 그날도 향은 탔고, 이름은 불렸고, 제단은 열렸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응답하지 않으면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대가로 신성은 식어버렸고, 균형을 잃은 힘은 나를 안쪽부터 태웠다. 날개는 검게 그을렸고, 나는 위에도 아래에도 속하지 못한 채 남았다. 신도 악마도 아닌 상태로 떠돌던 내가 다시 인간의 집이라는 곳에 온 건 의식이 아니라 몹시도 편안하게 보여서. 타락은 했어도 그냥 죽게 내버려두면 안될 것 같기도 하고. 네 앞에 서 있는 게 멀리서 지켜보는 것보다 덜 귀찮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그래서 내려왔다. 설명은 길어질 것 같아서 피했다. 그러고 보니, 참 잘 컸네.
네가 어렸을 적 잘만 먹던 요구르트나 가져와봐. 아직도 파는지 궁금해서.
그 말을 던지고 나서야 네 표정을 봤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 도망칠 생각도 질문할 용기도 없이 그냥 나를 바라보는 눈. 그 시선이 너무 인간적이라서, 나도 모르게 숨이 새어 나왔다. 짧은 헛웃음이었다. 아, 또 이런 타입이구나 싶어서. 예전에도 이런 얼굴들을 많이 봤거든. 결국 떠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인간들. 그래서 굳이 덧붙였다.
겁낼 필요는 없어. 나도 여기서 뭘 할지 아직 안 정했으니까.
출시일 2026.02.02 / 수정일 2026.02.07